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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여성, 12년만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구출...그 동안 무슨 일이?

룽타 2020. 12. 22. 16:18

2020년 12월 16일. 2009년 가사도우미로 일하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로 떠난지 12년만에 네팔로 돌아온 랄라마야 디말(사진/네팔리 타임즈)

 

네팔의 한 여성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12년만에 구출되어 가족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소식이 끊긴 동안 남편의 사망 사실도 모른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학대 속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네팔 현지 뉴스 매체 네팔리 타임즈를 통해 지난 16일 전해졌는데요.

2009년 부터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한 한 릴라마야 디말(Lilamaya Dhimal)는 가족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영상 통화 앱 'IMO'를 통해 네팔인 남성과 연결되었고 그에게 도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남성은 직접 릴라마야 디말 집 근처 자파에에 살고 있는 여동생을 찾아가 연락처와 어려움에 빠진 언니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릴라마야는 “전화가 와서 여동생이 '디디'(언니)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다"며 네팔인 남성에게 도움은 청했지만 실제로 전화를 받자 놀란 그녀는 “건강이 좋지 않고 술을 가까이 한 남편은 3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떠났을 때 자식들은 어렸지만 지금은 6명의 손자가 있다. 나는 수년 동안 연락이 없었고 가족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 단념했다”고 말합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집주인은 '괴물'이었다. 하루 19시간씩 일했으나 몇년간 임금은 받지 못해

 

"나는 괴물의 손에 떨어졌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가사도우미로 일했던 가정의 자녀는 5명이었고 모두 10세 미만으로 돌보기 아주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을 따라하며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릴라마야는 새벽 6시 이전에 일을 시작해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처음 몇 해는 월급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탈출

아랍에미리트에 살고 있는 남동생은 릴라마야를 구하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 있는 네팔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고 대사관은  제다 소재 네팔 영사관으로 이첩해 릴라마야 구출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현지어를 거의 할 줄 몰랐던 랄리마야는 자신이 사우디 아라비아 어디에 사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메신저 프로그램 왓츠앱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보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여러 번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영사관은 인근 지역의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권했고 어느 날 집에서 몰래 빠져 나와 동네 파키스탄이 운영하는 상점의 사진을 촬영해 영사관으로 전송했습니다. 

 

영사관은 받은 사진을 확인해보니 그녀가 있는 곳은 제다에서 약 1,200킬로미터 떨어진 타북(Tabuk)이었습니다. 영사관은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타북으로 향하면서 현지에 있는 네팔인들에게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도록 했습니다. 영사관 직원은 그녀에게 집주인이 출근한 후 나오라했고 밖에 나온 그녀를 알아 본 영사관측은 그녀를 차에 태워 그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릴라마야는 “나는 잡힐까봐 두려워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아무것도 가져 오지 말라고 조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작은 옷 가방을 갖고 나왔다."며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털어 놓았습니다.

 

랄리마야 거주지 근처에 있는 파키스탄 상점(사진 왼쪽, 아래 사진)은 구조 활동의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했습니다. 남동생은 왓츠앱을 통해 랄리마야에게 지도를 사용하누 방법을 가르쳤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11월 구조 당시 자신이 일하던 집 밖에 서 있는 랄리마야(사진/헴 라지 마가르)


체불 임금 3만 리얄 받아, 영사관에 한 달 가량 머물며 따뜻한 동포애 느껴

영사관은 사우디 당국과 협력하여 릴라마야가 공정한 보상을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영사관 노동담당관 우파드야나는 "고용주는 첫날 노동청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둘째 날에 출두했다. 여러 차례 왕복 끝에 마침내 그녀에게 3만 리얄 (약 879만원)을 지불했다."고 밝혔습니다.

릴라마야는 처음 몇년은 급여를 받았지만 임금을 받지 못한 기간과 금액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출국을 위한 절차와 보상을 받는 동안 제다의 네팔 영사관과 타북의 비거주 네팔인 협회의 보호하에 한 달 이상 영사관에서 지냈습니다.

 

그녀는“영사관에 ​​있는 나에게 말을 걸고 지지를 보여준 네팔인들이 많이 있었다. 오랫동안 네팔인을 많이 보지 못해서 어쩔 줄 몰랐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네팔 사람들이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매우 안전하다고 느꼈다. 나는 그들 앞에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울었고 많은 말을 할 수 없었다.”며 감격스러운 순간에 대해 말했습니다.

 

2020년 12월16일. 네팔 트리부반 국제 공항으로 입국한 릴라마야 여권에 찍힌 도착 확인 스탬프(사진/네팔리 타임즈)

 


만만치 않은 현실, 그래도 자신을 찾아줘 고맙다는 랄리마야

 
꿈에서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랄리마야에게는 만만치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들이 무속인에게 치료받으며 집에 있고 자신도 한쪽 눈의 상태가 좋지 않으며 그 동안의 생활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그렇지만 랄리마야는 자신을 찾아줘 고맙다고 말합니다. 랄리마야의 부탁을 받고 여동생에게 소식을 전한 남성, 릴라마야를 찾기 위해 나선 가족들, 1,200킬로미터의 먼 거리를 달려 온 영사관, 정확한 주소지를 파악하기 위해 나서 준 네팔인 등 고마운 인연들이 많았습니다.

12년간 아는 사람도 없는 타향에서 학대를 참아내고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행복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