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해당되는 댓글 건




"달라이 라마, 방한 추진 소식"


2014년 5월 19일. 서울 BTN 불교 TV에서 열린 달라이 라마 한국 방한을 준비하는 모임에 대원사 티벳박물관 현장스님을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2013년 10월, 달라이 라마 일본 법회에 자리에서 행불선원 월호스님께서 달라이 라마 방한을 추진하자고 발기하여 모임이 진행되었으며 2013년 12월 11일 첫 모임이 열린 후 이번 회의는 6번째 만남이였으며 금강스님(미황사)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국내외 여건상 짧은 시간안에 준비해서는 달라이 라마 한국 방한 추진이 어렵다는 데에 뜻을 같이 하고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준비로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라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추진 준비 위원회는 많은 분들의 뜻을 담아 만전을 다하는 분위기 였습니다.


다음 달 초부터 세부적인 활동이 시작될 것이고 준비위원회의 온라인 소통 창구도 마련되면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소식은 또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불교 신문, 2014년 4월 15일]


보산스님 | 논설위원·고양 길상사 주지



천주교의 최고 어른 프란치스코 교황이 천주교 아시아 청년대회와 시복식 참석차 방한한다고 발표가 나자 전 언론에서는 대대적으로 환영일색의 보도가 나왔다.


그의 방한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교단 내에 조직을 꾸리고 벌써부터 방한 준비 기사까지 쏟아내는 언론보도를 보면서 축하도 하고 박수도 보낸다. 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종교지도자 중 하나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타종교 지도자를 시샘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세계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너무 신속하게 처리돼 차별이 있는지 돌아 본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자비와 관용이 넘치며 비폭력을 주장하는 종교지도자로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써, 국제적으로도 대환영을 받고 있어 일본이나 타이완에는 이미 여러차레 방문 한 적이 있다. 많은 불자들은 일본이나 타이완에 가서 친견하고 오는 경우도 있다.


인권을 가장 앞 세웠던 김대중 정부 때도, 노무현 정부 때도 역대 어느 정부 때도 달라이 라마는 오지 못했다. 지금도 못 오는 연유를 누가 묻는다면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 달라이 라마가 못 오는 것이 불교내부의 문제라면 지금부터라도 준비 하면 될 것이다. 정치적인 문제라면 한번은 짚어 봐야 하지 않을까?  <관련 기사 더 보기>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미지 : 네이버 'Think Tibet : 티베트를 생각하는모임'http://cafe.naver.com/thinktibet 제작

 

 

<2014년 3월 10일은 티베트 민중봉기 55주년입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를 침략한 후 티베트인들에 의한 자치를 인정하고 문화와 종교를 존중해줄 것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야욕을 드러내었고 티베트인 사이에서는 중국의 만행에 분개하며 분노가 고조되고 있던 즈음에 1959년 3월 10일, 티베트 지도자를 납치하려 한다는 소문이 라싸 시내에 돌자 약 3만명의 티베트인이 자신들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하더라도 14대 달라이 라마를 지키기 위해 여름 궁전 '노르부 링까'에 모여 들었습니다.

 

티베트인과 중국 군대의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상황에서 14대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위협을 피해 1959년 3월 17일밤 티베트 군인 옷으로 갈아 입고 측근들과 함께 여름 궁전을 빠져 나간 이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중국 군대는 보석 정원이라 불리던 여름 궁전을 향해 계속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민중 봉기가 있은 후 1959년 3월 12일 티베트 여성들로 구성된 5,000명이 뽀따라 궁전 앞에서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티베트 민중 봉기로 약 87,000명의 티베트인들이 중국 군대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민중 봉기가 발생한지 55년이 되었지만 티베트인들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노력은 세대가 바뀌고 강산이 여러번 변했지만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 침략 후 희생된 모든 티베트인들의 넋을 기리고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망명 정부의 '중도정책'(독립이 아닌 완전한 자치를 통한 자유회복)이 실현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록빠, 사직동 그 가게에서 3월10일 민중 봉기 행사 포스터(출처:사직동 그가게)

 

<국내 티베트 민중 봉기 기념 행사>

 

한국에서 티베트 평화를 지지하는 분들이 모여 민중 봉기 기념 행사를 올해에도 열립니다.  많은 지지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4년 3월 9일(일)

 

   ★ 주최 : 티베트를 생각하는 모임 Think Tibet (http://cafe.naver.com/thinktibet)

   ★ 장소 : 인사동 북인사 마당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로 나와서 200m 정도 직진)

   시간 : 오후 12시 ~ 2시(리플렛 배부)

 

2014년 3월 10일(월)

 

   ★ 주최 : 록빠, 사직동 그 가게(http://blog.naver.com/rogpashop/90191605107)

   ★ 장소 : 사직동 그 가게

   ★ 시간 : 저녁 7시, 평화 기원 음악회 / 7시 30분 <영화,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 상영 

 

 

 관련 글 링크

2013/02/25 - 티베트, 평화를 꿈꾸다 ··· 분신 희생자 추모문화제 개최

2014/02/15 - 티베트인들의 절규, 티베트 분신 희생자 현황 (2009년~현재)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댓글을 달아 주세요

1959년 중국 군대의 위협을 피해 인도로 망명한 14대 달라이 라마의 뒤를 이어 약 8만명의 티베트인들이 정든 조국을 떠나 인도, 네팔 등으로 망명 길에 올랐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낯선 타국에서 어려운 망명 생활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낯선 기후, 음식 등의 열악한 환경속에서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살아 남기 위한 티베트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인도 정부로 부터 제공받은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고 카페트를 만들며 결코 녹록치 않은 시간 속에서 티베트인들은 정체성을 지켜 나가려 온갖 애를 썼습니다.  


60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터널속에서 어린 청소년들 중에는 중독성 약물 및 후천성 면역 결핍증에 노출되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 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거나 고통속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인도 다람살라를 중심으로 한 망명 티베트 사회는 약물 중독 및 후천성 면역 결핍증 예방과 치료에 대해 적극 알리기 위해 '꾼펜'(Kunpen)이란 NGO를 중심으로 캠페인을 펼쳐왔고 14대 달라이 라마께선 자신의 사재 일부를 꾼펜에 기부했습니다.  그러나, 꾼펜은 활동 과정에서 중단될 뻔한 몇차례의 위기를 겪었고 최근 활동 재개를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장 시급한 것은 재활치료센터 건립니다.  달라이 라마로 부터 받은 기부금으로 토지는 구입했지만 건물을 지을 돈이 없어 애타게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아이 러브 티베트 소개 글 : 2012년 12월 6일 / 망명 티베트 사회, 약물 중독 치료 센터 건립을 위한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 사정은 한국에서 티베트 전문 레스토랑 포탈라를 운영하고 있는 민수씨를 통해 우리나라에 알려졌고 구호단체인 '로터스 월드'에서 '벽돌 한 장 2천원'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로터스 월드 모금 안내 글 : 티베트 청소년을 위한 나눔 KunPhen 프로젝트


기존 활동으로 바쁜데도 불구하고 앞장 서 모금 활동에 나서 준 로터스 월드측에 감사를 드립니다.  티베트 자유를 위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지원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의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관련 글 링크


2013/12/06 - 망명 티베트 사회, 약물 중독 치료 센터 건립을 위한 도움을 요청합니다.

2013/04/23 - 세계속 티베트를 지지하는 사람들

2013/02/12 - 티베트를 돕는 방법 : 블루북(Blue Book) 프로젝트 소개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티벳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맥그로드건즈에 위치한 티베트인 NGO 단체 ‘꾼펜'(Kunpen)은 망명 티베트 사회의 약물 및 알코올 중독, 후천성 면역 결핍증 등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치료 및 재활 센터 건립을 위해 약 11년전부터 준비해왔으며 14대 달라이 라마로부터 250만 인도 루피(약 4천 2백만원)를 기부 받아 토지를 매입했지만 내부 사정 및 건축 자금 부족 등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해졌습니다.


최근 꾼펜의 책임자로 맥그로드 건즈의 ‘용링 스쿨’을 운영하는 티베트 망명의회 의원인 ‘다와 체링’씨로 바뀐 후 다시 재활센터 건립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티베트 전문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티베트인 민수씨가 ‘용링 스쿨’의 시설 보수를 위한 도움 요청을 받고 국내 뜻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기부금을 보낸 것이 인연이 되어 다와 체링 의원으로부터 치료 센터 건립에 필요한 자금을 도와달라는 메일과 자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와 체링 의원은 꾼펜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함께 달라이 라마 성하 사무소 및 망명 정부 보건부 차관의 추천서를 함께 메일로 보내왔으며 해당 내용은 첨부합니다.


약물 중독 재활센터를 위한 필요 금액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9천 7백만원으로 환율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민수씨로부터 자료 번역을 부탁받아 버벅거리며 한글로 옮겼으나 많이 부족합니다. 관련 내용 원문은 모두 함께 올리니 면밀히 검토하시어 부디 좋은 인연이 닿아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는 망명 티베트인들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이 전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관련 문의는 포탈라 레스토랑 민수씨(연락처: 010-4434-8848 / 이메일 10zing@hanmail.net)에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KUNPHEN
Centre For Substance Dependance HIV/AIDS & HRD
Near Delek Clinic, Bagsunag road, P.O. Mcleod Ganj, dharamsala 176219, Distt. Kangra(H.P)
Office Ph:01892 220565, Mob:  Executive Director 9857176806/  Counselor 9882443641 Director 94181 85475

Mailing Address
KUNPHEN 
Centre for Substance Dependence HIV/AIDS & HRD
Near Delek Hospital Clinic at Mcleod Ganj,
P.O. Mcleod Ganj 176219
Dharamsala (H.P.)  
Account No 10219816574
State Bank of India Mcleod Ganj 
Email: kunphenrevival@gmail.com/kunphen@mail.com



꾼펜의 약물 중독 예방 캠페인


꾼펜(Kunpen) 소개


중국의 침략으로 달라이 라마 성하와 수만명의 티베트인들은 1950년대 인도로 망명했습니다. 망명 티베트인들은 전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도전적이였습니다. 뜨거운 기후, 다른 언어, 의복은 낯설었고 음식은 맵고 생소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티베트인들은 받아 들이고 적응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습니다.


티베트인들은 천천히 수년에 걸쳐 그들의 경제적 상황은 개선되었고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주위 환경은 또한 티베트인들에게 영향을 줬습니다. 자신의 문화적 가치를 잃은 몇몇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번영하고 있는 건강에 해로운 유행과 물질주의에 휘말리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망명 티베트인들은 이 지역에서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젊은 티베트인들이 직업이 없고, 더 나은 경제 상황 추구로 가족 가치는 파괴되고 있었으며, 마약과 알코올 중독이 포함된 유해한 사회 활동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우리는 유사한 상황이 티베트 본토에서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상심했습니다.


망명 생활 중인 이곳에선, ‘롭상’씨가 11년전 마약과 알코올 중독된 많은 청년 티베트인들을 위해 회복을 위한 티베트인 재활 센터 설립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는 친척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꾼펜’(KUNPHEN)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학교 및 사원을 포함한 각종 티베트인 기관에서 약물 및 알코올 중독에 대한 인식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또한 중독 환자들이 북인도 지역의 (인도인이 운영하는) 재활 치료 센터에 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망명 티베트 사회에서 그런 일이 도움이 필요하고 프로그램은 도움이 된다는 것에 확신하고 절실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꾼펜의 활동을 확대하려는 상황에서 달라이 라마 성하는 2,500,000루피를 기부했고 꾼펜은 약물 & 알코올 중독 보호 센터를 짓기 위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롭상씨는 갑자기 캐나다로 이주하게 되었고 프로젝트는 불확실한 상태로 남았습니다. 꾼펜 이사회는 망명 정부 보건부에 프로젝트를맡아 줄 것을 요청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사회는 프로그램 수행을 위해 책임자를 임명했고 미국인 친구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나 몇 년 후 책임자 또한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운영하던 여러 프로그램은 책임자를 돕던 땐진 렉펠씨에게 넘겨졌습니다. 불행히도, 그 때 이후 프로그램 일부는 중단되었으며 이후 끝내 자금 부족으로 어떤 프로그램도 수행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기부하신 돈은 나중에 쓰려고 보관한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기부하신 돈으로 2010년(인도 맥그로드 건즈에 위치한) 노르부링카 연구소 부근에 토지를 매입했으나 재활 및 케어 센터를 지을 자금이 없어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긴급한 상황에서 이사회는 여러 차례 만나 상황에 대해 토의를 했고 보건부와 내무부에 꾼펜 프로젝트를 제안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받아 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이사회는 사회 활동가이자티베트 망명 의회 의원이며 또한 이사회 일원인 ‘다와 체링’씨를 부활힌 꾼펜의 책임자로 선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와 체링의 지도 아래 꾼펜은 부활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헌신에 깊은 감사와 큰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꾼펜”은 말 그대로 ““보편적인 자비””를 의미하며 마약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치료 및 관리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등록된 티베트인 NGO입니다. 또한 티베트인 망명 사

회에서 후천성 면역결핍증을 다룬 최초의 NGO입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인도 다람살라 인근에서 약물 과다 복용과 관련해 42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센터는 마약 재활 센터로 보내기 위한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약물 남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150명 이상의 티베트인이 센터의 도움을 주었으며 또한, 학교 인식 및 상담프로그램을 구성해 마약과 후천성 면역결핍증에 대한 젊은 티베트인 세대 사이에서 관심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러한 세미나와 프로그램은 전문가와 과거 중독자들의 경험을 학생들과 공유해 청소년들에게 중독 예방 교육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꾼펜의 약물 중독 예방 캠페인




새로운 꾼펜 책임자 '다와 체링'의원이 민수씨에게 보낸 메일 전문

Dear Tenzin la,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concern and  help towards the Yongling school and tibetan community. As you know that the drug and alcohol problem is the problem of  world  and it not spare the any cast, creed, nation. So  drug culture has entered into tibetan community in late 70's and now its eating our youths and eliminating the Tibetan culture. our Govt doing their best to cop the problem but do not have proper rehabilitation centre to treat this patient.   From Years  2000 to 2012 about 45 youths are died  with  over dose and alcohol, Hiv/ Aids.  The average percentage per year is  3 and half youths are dying in year and if we get the average of 54 tibetan settlement  India based with above percentage then may be more than 100 youths are dying in  a year. Keeping this in mind we are planing to built rehabilitation center of our own,for Which Dalai lama office has donated 25 lakhs, which we bought land near by Norbulingka institution at Dharamsala. therefore, we are compelled to have our own rehabilitation centre to treat these patient and stop dying with negligence. So, for our emergency need  or first phase to rehabilitate the patient the cost of the project is  about Rs. 3555000/ and we are able to collect  locally  about Rs. 100,0000/ ten lakhs.   Now we need 2555000/-which is equavalent US $ 41000/- Our second phase cost is Rs. 2980000 twenty nine lakhs.
We are pretty much sure that if are able to built this rehab centre we will save the lives of many youths and Tibetan culture. there fore for the Dharma seek , with compassion  open your heart to save our younger generation.  I am attaching the full project proposal, support letter from HH Dalai lama office and Health Department  and others, rough sketch of building and some picture of the activities carried by us in last 5 months to make awareness and educate the public. I will send you archetect designed  of building  later it is yet to complete. thank you 


Yours truly

Dawa tsering
Director.

달라이 라마 사무소 및 보건부 차관 추천서



꾼펜 소개서(영문 원본 및 한글 번역본)



꾸펜프로젝트(워드).doc


Introduction kunphen.docx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샤카디타 코리아 (Sakyadhita Korea, 세계불교여성협회 한국지부, 본 회는 한국 불교여성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조성하여 세계의 여성들과 교류하고 지구의 다른 지역의 여성들과 소통함으로써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실현하는데 이바지하고자 한다)는 창립을 기념하여 티베트 불교의 텐진 빠모 스님을 초청하여 다음과 같은 행사를 개최합니다.


텐진 빠모(Tenzin Palmo)스님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존경을 얻고 널리 알려져 있는 비구니 큰 스님입니다.




(주) 소개 글은 유나방송 게시판에 올려진 주최측인 '샤카디타 코리아'에서 작성하신 내용이며 보충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박스 글로 추가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은 텐진 빠모 스님께서 이끄는 사원 홈페이지(http://tenzinpalmo.com) 등에서 옮겨 왔습니다.

 



1. 히말라야 설산에서 12년간 독거 수행


텐진 빠모 스님은 영국 출신으로 20세에 티벳으로 출가하여 캄뚤 린포체에게 배움. 스승의 조언을 따라 히말라야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겨울에 영하35도에 이르는 극한의 환경에서, 3미터x2미터의 작은 동굴 속에서 장좌불와로 하루 3시간 수면을 취하며 12년간 용맹 정진하였음.



2. “나는 여자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


텐진 빠모 스님은 수행 이력과 신념, 그리고 대중적 흡인력으로 현재 세계불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사 중 한분입니다. 연중 전 세계를 순회강연하고 있으며, 또한 히말라야지역의 여성들을 위한 사원 설립과 교육에 깊은 정열을 쏟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에서의 12년 수행을 끝내고 나온 후 영국의 한 저널리스트와 인터뷰에서 텐진 빠모 스님은 여성의 몸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인터뷰의 결과가 『나는 여자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라는 책입니다. 이 세상의 누구도 자신에게 부가되는 사회적 제약과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때 제 능력을 온전하고 그리고 완전하게 발휘할 수 있으며, 그것은 여성 수행자에게도 똑같다고 천명합니다. 불교의 창시자 붓다는 양성평등적인 사상을 가졌지만 교단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남성 수행자들에 비해 여성 수행자는 가볍게 취급되고 그들의 능력은 과소평가됩니다. 재가 여성 신자들을 비하하는 표현을 흔히 들을수 있습니다. 전생의 업 때문에 여자로 태어났다거나 여자는 현생에서 성불하기 어렵다는 말이그런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 생각 때문에 위축되어 여성 수행자는 흔히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에 대해 회의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제약과 자기회의를 극복하고 여성의 무한한 자비심과 화합의 정신으로 세상을 바꾸는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창합니다.



3. 세계불교여성인권을 위해 노력하다.


1700년이 넘는 오랜 비구니 전통이 있는 한국과 달리 티벳에는 비구니 전통이 없습니다. 티벳의 여승들은 “아니“라고 불리며, 사미니 수계만 받고 비구니 수계가 없습니다. 테라바다 불교 국가인 태국과 스리랑카에는 아예 여성의 출가 자체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티벳의 여승들은 비구니계를 받지 못하고 비구니 승단이 없기 때문에, 비구 스님들에게 열려있는 어려운 경전이나 토론법, 의식 등 오랜 내려온 전통적 지식에는 접근 조차할 수 없습니다. 



(추가 설명)  텐진 빠모 스님 같은 분들의 노력이 밑거름이 되어 티베트 불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미니 스님들도 비구들과 마찬가지로 경전 토론을 할 수 있고 남성 출가자들만 가능했던 최고 학위인 '게쎼'시험에 여성 출가자들에게도 문이 열려 올해 5월 첫 '게쎼마'시험이 시행되었습니다.  


   ☞ 관련 글 링크


  - 2012년   3월 23일, 티베트 불교, 여성 출가자들도 최고 학위 시험 도전 가능해진다.

  - 2012년 10월 9일, 티베트 불교 사원간 경전 토론 개최

  - 2013년  5월 25일, 역사상 처음 열린 티베트 불교 최고 학위 '게쎼마'에 도전하는 여승려들



텐진 빠모 스님은 여성들이 출가하여 비구니 승가僧伽의 당당한 일원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종교 생활을 영위할 권리는 주장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라고 역설합니다. 그들에게도 불교의 오랜 심오한 학문적 전통을 배울 교육의 균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자기를 개발하고 실현함으로써 미래 사회의 지도자가 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텐진 빠모 스님은 달라이라마 성하가 지정한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장차 티벳에 비구니승단을 건립하기 위해 모든 힘을 바치고 있습니다. 또한 비구니승단과 계단이 없는 국가의 비구니들에게 합동으로 수계를 주자는 세계비구니계단 설립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연락처: 김한울 (홍보국장, 010-3206-1488)






    텐진 빠모 (Tenzin Palmo) 스님 방한 일정



● 11월 6일 (수요일) 오후 16:40시 인천 공항 도착 

● 11월 7일 (목요일) 전국비구니회관에서 비구니 스님을 위한 강연

● 11월 8일 (금요일) DMZ에서 여성종교인 평화기원 기도회 (원불교와 합동)

● 11월 9일 (토요일) (미정) - 봉녕사, 봉은사, 또는 유나방송

● 11월 10일 (일요일) 텐진 빠모 스님 초청 대법회

      - 시간: 오후 2시 - 5시 

      - 장소: 조계사 경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전통문화예술공연장

      - 주관: 샤카디타 코리아

      - 공동주최: 불교여성개발원, 샤카디타 코리아

      - 후원: 잠실 불광사, 보덕학회, 봉녕사, etc (미정)

● 11월 11일 (월요일) 샤카디타 코리아 회원을 위한 1박2일 단풍놀이

     “천년고찰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텐진 빠모스님과 함께 걷기” 

       내소사, 변산반도, 선운사 일원

● 11월 12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델리로 출발

 


약력


●1943년 - 영국출생, 본명은 Diane Perry

●1961년 - 18살에 도서관에서 불교서적을 읽고서 감명을 받아 20살에 인도로 가서 평생의 스승인 깜뚤 린포체를 만남.

8대 깜뚤 린포체(=캄툴린포체, 1931~1980)



●1964년 – 출가를 허락받고 둡규 텐진 빠모라는 법명을 받음. 티벳 불교 전통 전체에서 2번째로 계를 받은 서양인 비구니 (티벳불교 금강승 전통에서는 비구니 전통이 사라졌기 때문에 1973년에 홍콩에서 비구니계를 구족하였음)


1973년 홍콩에서 비구니계를 받는 텐진 빠모 스님



● 히말라야 깊은 산 속에서 12년간 장좌불와 하면서 수행. 



수행 당시 텐진 빠모 스님 모습



●1988년 비자 문제로 동굴을 나옴. 스승의 권고를 따라 여성 수행자들을 위한 사원 건립의 서원을 세우고 세계를 여행하면서 강연, 법회


14대 달라이 라마와 텐진 빠모 스님

●2000년 북인도 따시종 근교에 돈규 가찰 링 사원 (Dongyu Gatsal Ling Monastery)을 설립. 티벳과 히말라야 지역 여성수행자들을 위한 주요 교육기관임.


●2005년 달라이라마 성하에 의해 ‘6인의 서양비구니위원회’ 위원으로 위촉. 티벳불교 내에서 비구니 전통을 되살리는 역할을 맡고 있음.  


.●2008년 둑빠까규의 수장 걀왕둑빠로부터 티벳 여성수행자의 최고 지위인 제쭌마 지위 받음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티벳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유죄 판결에 귀화 거부당할까 걱정하는 소설 ‘나마스테’ 실제 주인공

“살기 위해 철거민 투쟁했는데 벌금 500만원 선고”... ‘품행 단정’ 귀화 요건에 어긋나


【출처 : 민중의 소리, 2013.10.11 / http://www.vop.co.kr/A00000687386.html 】


“만삭인 아내와 네 살, 두 살짜리 아이들, 장애를 가진 장모를 둔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가장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강제 철거에 불응하고 식당을 계속 운영하는 것. 그런데 대한민국의 법은 ‘사연이 어찌 됐든 불법은 불법’이라며 한국 땅에서 강제퇴거(이하 추방)를 당할 수 있는 양형을 선고했다. 언제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할지 모른다”.


2년 전 철거민 된 네팔인 민수씨, 가족과 생이별 위기에...


티베트 출신 네팔인 라마 다와 파상(LAMA DAWA PASANG, 한국이름 민수, 37) 씨는 박범신 작가의 소설 ‘나마스테’의 실제 주인공이다. 박범신 작가는 2004년 이주노동자에 대한 소설을 준비하던 중 민수씨를 만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네팔인 노동운동가 ‘카밀’의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소설 ‘나마스테’는 출간하던 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이후 연극으로도 옮겨졌다.


민수씨는 2000년에 한국에 입국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2003년 출입국관리소의 대대적인 단속에 이주민 20여명이 자살한 일이 벌어지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민수씨는 세계 최초이자, 우리나라 최초로 이주민 노동조합을 세우는데 초기 멤버로 참여했다.


그의 아내 이근혜(33) 씨는 노점상인 이재식 열사의 딸이다. 근혜씨가 10살이던 1989년, 거제도에서 핫도그를 굽던 아버지는 ‘이 한 몸 바쳐 노점상을 탄압하는 노태우 정권에 경고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이씨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전국노점상 총연합회 활동가로 일하다 농성장에서 민수씨를 만나 2006년 결혼했다. 


민수씨와 근혜씨의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만남이기도 하면서, 또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두 운동가의 결합이기도 했다. 


부부는 이재식 열사가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돼 받게 된 정부 보상금으로 서울 명동에 티베트 식당을 차렸다. 음식을 통해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부당함을 알리면서 생계도 해결하고, 기왕이면 운동가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 두 사람의 뜻이었다. 민수씨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돼 식당은 ‘민주화의 성지’로 여겨지는 명동성당 앞에 터를 잡았다.


포탈라 레스토랑 민수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정통 티베트 음식점 '포탈라 레스토랑'의 대표 민수 씨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이승빈 기자



법원 “적법한 절차로 이뤄진 철거작업 방해한 철거민에 벌금 500만원”


부부는 2008년 6월 포탈라 레스토랑을 열었다. 당시 건물주는 ‘1983년부터 개발한다고 말만 한다, 앞으로 5년은 문제없다’는 말로 부부를 안심시키고, 임차인 계약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한 달 보름 후인 8월, 건물주는 명동 도시환경 정비사업의 시행사인 A사에 건물을 팔아넘겼다. 


A사는 2011년 4월 26일 명동 지역 19개 사업장 상인들에게 “5월 31일까지 명도를 하지 않으면 강제 명도를 단행한다”는 내용의 계고장을 보냈다. 근혜씨는 급하게 철거에 관해 공부했지만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이 철거나 재건축 등을 목적으로 임차인을 내보내는 경우, 임차인은 퇴거요청을 받아들이게 돼 있었다. 부부는 가게 인테리어에만 2억여원을 쏟아 부었는데 손익분기점에 이르지 못한 시점에서 보증금 3천여만원, 4개월 치 영업 손실 보상금 1천여만원만 받고 퇴거 명령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이씨는 세입자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4개월 동안 집에 귀가하지 못하고 철거 부지를 지켰을 만큼, 철거에 반대 의지가 강했다. 이듬해인 2012년 4월 4일 보상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부부는 1년여간 힘겹게 싸웠다. 강제 퇴거를 당한 부부는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두 번째 포탈라 레스토랑을 차렸다. 


그러나 민수씨에게 지금은 철거돼 없어진 명동 포탈라 레스토랑은 ‘2년 전에 끝난 일’이 아니었다. 당시 식당의 강제 명도(철거)에 맞서던 민수씨는 지난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2년 전 강제 철거에 반발해 철거지역 일대에서 집회를 열고, 철거하러 온 크레인을 몸으로 막았던 것이 공무집행 방해, 업무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세 가지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포탈라 레스토랑 민수

민수 씨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정통 티베트 음식점 '포탈라 레스토랑'의 모습.ⓒ이승빈 기자




“벌금 200만원 이상은 품행 단정치 못한 증거, 언제 쫓겨날지 몰라”


근혜씨는 “남편은 지난 5월 귀화시험에 합격했지만, 이번 판결로 귀화가 취소될 수 있고 강제 추방까지 당할 수 있다. 이는 법적 처벌 외에 가족과도 생이별할 수 있어 이중처벌”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국적법 5조 3항의 “귀화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품행이 단정할 것”이란 내용을 근거로 귀화를 심사한다. 민수씨는 “‘품행 단정’의 명확한 기준은 알려진 것이 없지만, 이주민들은 경험을 통해 ‘50만원 이상의 벌금’이 품행이 단정치 못한 한 가지 기준임을 안다”며 “50만원 이상의 벌금을 받은 이주민들은 3년간 귀화 신청을 해봤자 불합격하고 합격한 귀화가 취소되기도 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또 법무부는 내부규칙으로 200만 이상의 벌금을 받은 이주민에게 강제 추방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민수씨는 이번에 받은 500만원 벌금 판결로 합격한 귀화가 취소될 수 있고, 강제 추방 조치까지 당할 수 있다.


민수씨를 변호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백선옥 변호사는 “국적법의 ‘품행 단정’ 기준은 출입국관리소가 자의적으로 판단하게 돼 있다. 200만원 이상의 벌금이 품행 단정의 기준이 될 수 없다”며 “같이 재판을 준비하며 지켜본 민수씨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누구보다 품성이 발라 대한민국 국가공동체의 주권자로서 받아들임이 손색이 없으며 오히려 매우 자랑스러운 국민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백 변호사는 “민수씨는 10년을 넘게 한국에 살며 단 한 차례의 전과도 없이 5명의 가족을 부양 중인데 사회상규에도 어긋나지도 않은 철거반대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귀화 허가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 놓인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전과 등을 이유로 귀화를 불허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귀화 심사에 차별이 없도록 ‘품행 단정’ 등의 조항에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라”고 법무부 장관에 지난해 1월 권고한 바 있다. 


포탈라 레스토랑 민수

민수 씨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정통 티베트 음식점 '포탈라 레스토랑'의 모습.ⓒ이승빈 기자




“나는 아빠다. 끝까지 싸워 한 가정의 가장 자리 지킬 것”


민수씨는 “담당 판사가 진보적인 판결을 여러 번 낸 인물이라 기대가 컸다”며 “그러나 판사는 판결문에서 ‘포탈라 레스토랑이 아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어 보이는 150m 떨어진 다른 임차인의 가게가 철거되는데 집회에 참석했다’고 지적하며 혐의를 인정했다. 이는 철거민들은 자기 잇속만을 위해 싸우는 이기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2011년 임신한 아내와 가게 바닥에서 한뎃잠을 자며 철거민 투쟁을 이어나간 것은 우리 가정의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것도 있지만, 한국사회가 약자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반대할 목적도 있었다”며 “철거민, 장애인, 이주민 등 약자는 싸움을 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 한국사회”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재 한국에서 나는 새옴(7)·대옴(4)·해옴(2)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근혜의 남편, 장애인 장모님을 모시는 사위, 티베트 식당에서 네팔 이주민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장님”이라며 “여러 책임을 남겨두고 강제 추방을 당할지도 모르는 지금 심경은 목에 아주 잘 갈린 칼날이 들어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또 남편이 강제 추방 위기에 몰린 근혜씨는 “남편과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둘이 합쳐 월 200여만원을 벌지만, 사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잘됐으면 하는 큰 욕심이나 기대는 없다”며 “다만 우리가 원하는 좋은 세상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고, 남편이 한국에서 10년이 넘게 일궈온 그의 자리와 우리 가정의 구성원으로서의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벌금 500만원은 가정 형편에 너무 부담스럽고, 남편이 강제 추방 명령을 발부받을 수 있을 위험이 있는 금액”이라고 호소했다. 


민수씨는 “철거민 투쟁 당시 용역경비원들과의 몸싸움은 임신한 아내 등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했다”며 “검찰은 2심 판결에 대해 상고했고, 나 또한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3심에서도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을 받지 못하면 이의 신청을 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도 넣어 한 가장으로서의 자리를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포탈라 레스토랑 민수

민수 씨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정통 티베트 음식점 '포탈라 레스토랑'의 모습.ⓒ이승빈 기자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다음 달 3일 부터 열리는 제18회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 작품으로 티베트 불교 스승이자 영화감독 키엔체 노르부의 '바라, 축복(Vara: A Blessing)"으로 결정됐습니다.

 

9월 3일,  부산국제영화제(BIFF) 조직위는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갖은 기자회견을 통해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영화제에 상영되는 70개국 301편의 영화를 소개했습니다.

 

키엔체 노르부(=종사르 켄체 노르부) 감독은 인도 유명 소설가 수닐 강고파디아이의 단편 소설 '피와 눈물'을 바탕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썼으며,  영화 컵(Cup, 1999), 나그네와 마술사(2003)에 이어 3번째 작품입니다.

 

데뷔작인 <컵>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국제영화평론가 협회상을 받았습니다. 



 

 

                                                                                                          (영화 스틸컷/영화사 홈페이지)

 

 

 

영화제 측에 따르면, '바라, 축복(Vara: A Blessing)'은 인도 남부 지방의 전통 춤 바라타나티암을 매개로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과 자기 희생, 역경의 삶을 헤쳐나가는 여인의 강인한 의지가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펼쳐지는 작품으로서 인도의 어느 자그마한 시골마을. 바라타나티암 무희 ‘데바다시’인 어머니에게 춤을 배우는 처녀 릴라는 조각가가 되기를 꿈꾸는 하층계급의 청년 샴과 사랑에 빠진다. 여신상을 만들려는 샴의 요청으로 릴라는 모델이 되고, 둘은 깊은 관계에까지 이르게 되며 릴라는 샴을 크리슈나 신으로 상상하기에 이르지만 그들의 관계는 마을촌장 수바에게 발각이 되고, 릴라는 샴과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기로 합니다.

 

이 작품에서 ‘바라타나티암’은 단순한 춤 그 이상으로 ‘바라타나티암’은 계급의 차이를 초월하여 모두에게 평등한 춤이며, ‘아름다움’과 ‘숭고함’ 모두를 지닌 특별한 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릴라의 선택은 구도자의 길과 닮아 있으며, 그녀의 춤은 구도의 한 방식인 셈입니다.

 

 

 

 

 [참고] 티베트 불교 스승이자 영화감독인 '종사르 켄체 노르부 린뽀체 '

 

 

 

 

 

티베트에서 태어난 아버지 틴래 노르부 린뽀체(1931~2011)의 아들이자 닝마빠의 위대한 스승인 '뒤좀 린뽀체'(1904~1988)의 손자이기도 합니다. 종사르 켄체 린뽀체는1961년 히말라야 부탄왕국에서 출생했습니다.
 
19세기 동부 티베트 캄의 더게지역 '종사르'사원에서 '잠양 켄체 왕뽀'(1820–1892)로 부터 시작된 '리메'(무종파 운동)인 '켄체' 법맥을 잇는 종사르 켄체 린뽀체는 7살때 싸꺄빠를 이끄는 싸까 티진 린뽀체로 부터 '종사르 켄체 최끼 로되'(1893~1959)의 환생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종사르'는 법맥이 시작된 본산인 사원의 이름이며, '켄체'는 법맥을, '린뽀체'(=린포체)는 '귀중한, 고귀한'이란 뜻으로 주로 환생 라마(뚤꾸)에게 붙이는 존칭어입니다.

 

 티베트 불교 특징 중에 하나는 승려가 아닌 뛰어난 재가수행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환생자라고 해서 반드시 출가해서 승려가 되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공부와 수행으로 뛰어난 분들이 많습니다. 
 

 

 

[영화 스틸컷]

 

 

 

 

 

 

 

 

 

 

 

(이미지 원본:영화제작사 홈페이지)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13회 광주국제영화제에서 티베트 분신을 다루는 첫 영화가 상영될 예정입니다.  다큐멘타리 사유진 감독은 2009년 이후 티베트에서 분신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티베트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올해 봄부터 최경실 무용가 함께 햇살댄스 프로젝트 '티벳'을 제작해 이번 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선'이라는 테마로 선을 보입니다. 

 

티베트인들의 분신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티베트내에서 120명이 분신을 했고 이중 10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인도, 네팔에 거주하는 망명 티베트인들도 3명이 분신으로 숨졌습니다.




 

더 이상 분신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그 땅에 짙게 드리운 절망이라는 어두움이 하루 빨

리  걷히기를 기원합니다.

 

제작을 위해 애쓰신 감독님과 영화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티베트에 평화가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상영일 : 2013년 9월 1일(일), 광주 메가박스 7관 오후 8시 20분

 

자세한 내용 : 광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참고 (http://www.giff.org/) ☆

 

 

 

 

 ■ 감독 사유진 소개

  1. 1969. 3. 충북 보은 출생
  2. 1996. 2.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졸
  3. 現 다큐멘타리 영화감독, 공연예술 영상 디자인/제작 감독
  4. 역사, 사회, 문화, 예술, 종교, 인물 등 인문사회 분야 전문 다큐멘타리 감독


     ▶  다큐멘타리 ◀

  • <라 당쓰 플리드La Danse Fluide>(2012, 장편다큐, 90분, HD, 기획/촬영/편집/감독)
  • <햇살 댄스 프로젝트 Ver.광주>(2012, 댄스비디오, 95분, HD, 기획/연출/감독/편집)    

            2012 제 12회 광주국제영화제 초청 상영

  • <배다리 리포트>(2008, 단편다큐, 13분, HD, 촬영/편집/감독)                        

             KBS 열린채널 방영 8. 7, 퍼블릭엑세스시민영상제 상영)

  • <People of No Return> (2005, 장편다큐, 82분, DV6mm, 촬영/편집/대본/감독)

            2006 뉴욕국제독립영화제 공식 초청 상영(5월 9일)                             

            2006 명동성당 꼬스트홀 공개 시사회(2월 17일) 

            2005 인디다큐페스티발 (국내신작전 초청 상영. 10월 31일)

  • <David Star>(2001, 장편다큐, 75분, DV6mm, 기획/촬영/대본/편집/감독)

                     제4회 서울국제다큐멘타리영상제(주최: 중앙방송/Q channel) 상영

                     KBS 열린채널 방송(2000. 12. 15)

                     미추홀 영상제 우수상(2001) 외 다수

 

 

■ 출연

 

○ 최경실 무용가(현, Spring Dance Theatre 대표)

  1. 경희대학교 및 동대학원 졸업
  2. 동덕여대 박사학위 취득


    *주요 공연경력*

  • 2012 <춤 논객>, <햇살 댄스 프로젝트 Ver. 광주(세 번째 이야기)>
  • 2011 국립현대무용단 안무가베이스캠프 선정 <포옹>
  • 2010 제 31회 서울무용제 <물의 꿈>
  • 2009 아랍국제현대무용페스티발 순회공연(베이루트, 암만, 예루살렘, 이스라엘, 팔레스틴)
  • 2008 뒤셀도르프 탄즈메세 <물 좀 주소>


    *수상경력*

  • 2010 제 31회 서울무용제 <안무대상> 수상
  • 2010 현대무용진흥회 주최 올해의 최고무용가사상
  • 2008 PAF 주최 <올해의 춤작가상>
  • 2007 PAF 주최 <올해의 안무상>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음력 7월 6일인 어제는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의 처서(處暑)입니다. 24절기가 중국 황하강 유역에서 만들어져 우리와는 잘 맞지 않는다 해도 여름 내내 더위와 마음 속 어떤 넘하고 싸우느라 지친탓인지 처서가 반갑습니다.

 

어제 류시화 시인의 페북 글을 보고 문득 지난 봄에 구입한 류시화 시인의 제3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라는 책을 뒤적입니다. 티베트도 이제 곧 가을입니다. 이제 다음 달이면 보리걷이가 시작되고 나무들은 옷을 갈아 입습니다. 우리나라 가을 나무잎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티베트 고원의 나무들은 나름 가을의 자태를 뽐냅니다.

 

몇해 전 가을 그 땅에서 만난 각별했던 인연들이 그립습니다.

 

 

 

 -오늘처럼 내 손이 -

 

오늘처럼 내 손이 싫었던 적이 없다.

작별을 위해 손을 흔들어야만 했을 때 어떤 손 하나가 내 손을 들어 올려 허공에서 상처 입게 했다.

 

한때는 우리 안의 불을 만지던 손을 나는 멀리서 내 손을 너의 손에 올려놓는다.

너를 만나기 전에는 내 손을 어디에 둘지 몰랐었다.

 

새의 날개인 양 너의 손을 잡았었다. 손안 가득한 순결을 그리고 우리 혼을 가두었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내 손이 싫었던 적이 없다. 무심히 흔드는 그 손은 빈손이었다.

 

*시인 류시화*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댓글을 달아 주세요

 중국, 지배력 강화 목적으로 티베트 조세 피난처로 운영

 

 

지난 11일(현지 시각), 경제전문지 영국 파이내셜 타임즈(FT)가 티베트가 중국의 새로운 조세 회피처로 부상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티베트 산난(山南)현 지방정부가 사모펀드 투자회사를 유인하기 위해 다양한 세금 우대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하고 전국 평균 25%보다 10%가 낮게 법인세를 책정하고 세금 500만 위안(약 9억 1천만원) 이상 낸 기업에는 최대 40%까지 환급해 준다고 밝혔습니다.

 

인구 30만명의 산난현은 90% 이상이 티베트족이며 지역내 투자기업 거의 대부분은 한족이 주인이라고 FT는 전하며 이러한 정책들이 티베트 지배력 강화 목적으로 보인다는 관점을 내놨습니다.


 이와 같은 소식을 조선, 이투데이, 이데일리, 경향, SBS, 연합뉴스 등이 12일과 13일 국내에 전했는데 타 언론사와는 달리 약 7일 후 이코노믹 리뷰지가 같은 소식을 뒤늦게 보도하게 됩니다.


 

 

2013년 8월 19일, 영국 파이내셜 타임즈(FT)의 티베트 조세 피난처 원문 기사 보도가 있은 후 8일이 지난 후 보도하며 근거없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 이코노믹 리뷰지 기사

 

(이미지/화면 캡처)


 

티베트인은 범죄 민족?

 

그런데, 기사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묘한 부분이 보였습니다. 다른 내용들은 타 언론사와 크게 다르지 않는데 "티베트인들은 최근 들어 이를 빌미 삼아 정부에 독립을 요구하며 거세게 저항해 유혈사태로 까지 번지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중국 내 다른 도시로 옮겨가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제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팩트입니다.

 

 

 1. 티베트인들은 조세피난처를 빌미 삼아 정부에 독립 요구와 유혈사태로 번진 일이 없

     습니다.

 

이코노믹 리뷰가 언론사로서 사실을 근거로 기사를 썼는지 의문스러운 부분입니다. '최근'이란 표현의 사전적 의미는 '얼마되지 않은 지나간 날부터 현재 또는 바로 직전까지의 기간을 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독립 요구 시위가 있었다면 그리고 유혈사태가 발생했다면 가장 먼저 소식이 뜨는 매체들이 인도 다람살라에 위치한 망명 티베트인 뉴스 매체들과 망명 정부 그리고 미국 자유아시아 방송(RFA)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입니다.

 

티베트내 주요 사건이 발생하면 현지 티베트인들은 인터넷이나 휴대폰을 통해 망명 사회나 RFA 등에 제보합니다.  제가 3년 동안 관련 뉴스 매체를 지켜보면서 느낀 점 입니다.

 

한 마디로 이런 뉴스가 나온 적이 없습니다.  과거 3년 안에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산난현은 티베트 얄룽왕조의 발생지로서 왕들의 무덤, 최초의 궁전, 최초의 사원 등이 위치한 곳입니다. 

 

또한 2009년 이후 120명의 티베트인들이 분신을 했지만 대부분 동부, 동북부지역에서 발생했고 티베트 중부 지역인 산난에서는 한 건의 분신 소식도 없었습니다.  희생자 명단을 계속 챙겨 왔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합니다.

 

 

2. '티베트인들은 중국 내 다른 도시로 옮겨가 각종 범죄를 저지르며 공포 분위기를 조

     성하기도 한다.' 며 범죄 민족으로 말한 근거를 말해주십시오.

 

이코노믹 리뷰지의 말대로 하면 티베트 민족은 저질스럽고 타락한 민족이 됩니다.  혹시나 파이낸셜 타임즈 영어 원문 기사에 그런 내용이 있나 해서 직접 찾아 봤습지만 없었습니다.

 

☞ 해당 영문 기사 : http://www.ft.com/intl/cms/s/0/657d21a0-00e4-11e3-8918-00144feab7de.html#axzz2cSpi7xQo 

 

 

기자가 위와 같이 기사를 쓴 것은 자신이 그렇게 인식하게 된 원인이 있었을 것 입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중국어나 영어 신문을 보고 알게 되었다라는 식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면 해당 근거 자료를 밝혀 주십시오.  왜냐하면 국내 언론에는 그런 소식들이 보도된 내용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을 설득할 만한 어떤 근거도 내놓지 못한다면 언론으로서 무책임한 기사로 인해 티베트를 왜곡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당연히 정정 기사를 내야 합니다.

 

지난 한겨레 신문의 달라이 라마 비난 기사가 있은 후 정정 기사를 받아 내기는 했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더니 씁쓸한 언론의 모습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사실에 근거한 균형감을 갖춘 기사를 내주세요.

 

 

 

 

"(추가) 해당 언론사에 오늘 항의 메일을 보냈고 이코노믹 리뷰지는 관련 기사에 하단에 '정정합니다'라는 짧은 말을 덧붙이고 문제된 관련 내용은 삭제 했습니다.  언론인 여러분, 여러분이 티베트에 대해 근거를 갖고 균형을 갖춘 기사로 비판한다면 당연히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한겨레, 이코노믹 리뷰 처럼 이유없는 비방을 하시면 안됩니다.  일본으로 부터 침략 당한 우리 나라 처럼 중국 점령하에 고통받는 티베트인들이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다시 한 번 신중하게 접근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Sity 2017.01.10 11:5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은일을 하시네요! 이거외에도 종종 중국의 침략을 합리화 하는 등 왜곡된 기사들이 있더군요


 

따시델렉! (행운과 행복을 바라는 티베트식 인사)

 

 

저는 '더 티베트 미러'를 운영하는 룽타(風馬, 티베트어 원음은 룽따에 가까움)라고 합니다. 룽타는 티베트 기도 깃발에 새겨진 말(馬)을 뜻합니다.

 

물론, 한국 사람입니다. 그냥 룽타라는 단어가 좋아서 큰 뜻에는 턱없이 부족하면서도 저 혼자 쓰기 시작했습니다.

 

티베트와는 인연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힘든 삶의 시간이 있을 수 있고 저 또한 그랬습니다.  잠시 티베트 라싸에 살면서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인연은 계속 이어져 인도 다람살라에서 17대 까르마빠 존자님과 14대 달라이 라마 존자님 법회에 참석하게 된 큰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 곳에서 다시 마음의 평안을 얻으며 큰 도움을 받게 됩니다.  

 

티베트 소식을 전하는 제 블로그에 방문하는 분들이 티베트는 신비와 환상속의 땅인지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어서 몇자 올립니다.

 

 

티베트인들 따라 함께 돌고 돌았던 조캉사원 (사진/위키피디아)

 

 

 

신비로운 티베트?

 

 

스스로 티베트에 대해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하는 이가 운영하는 블로거이니 당연히 티베트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겠구나라고 짐작하신 분들이 대부분이겠지요.  틀리지는 않습니다만 무조건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신비나 환상에 갖혀 티베트를 사랑한다고 하면 이에 대해 '아닙니다'라고 잘라 말합니다.

 

다른 티베트 마니아들도 그렇겠지만 저 또한 티베트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애쓰고 타인들에게도 그리 말해왔습니다.

 

환상이나 신비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비롯되는 면이 적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그늘진 면을 볼 수 있는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몇해 전 티베트 수도 라싸에 살 때 지금이나 그때나 티베트에 대해 쥐뿔 아는 것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당시에 살며 듣고 본 일들은 티베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들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는 티베트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이 더 많았던 시기였기에 제 머리속에는 기도 바퀴를 돌리고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인들, 웅장한 뽀다라궁, 아름다운 자연 등이 전부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티베트는 제가 생각했던 좋은 모습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청년하고 바람난 아줌마의 호텔 출입, 장사꾼의 칼에 맞아 여러 명이 다치고 운전하다 시비가 붙어 차 세워 놓고 주먹다짐하는 모습,  어설픈 솜씨로 소매치기하려던 아이, 한 밤중에 자전거를 훔쳐 도망가는 학생과 뒤를 쫓는 사람,  도시 현대화로 돈 좀 만진 어느 아저씨들의 성매매 마사지 업소 출입,  팔뚝에 문신을 드러내고 가게 앞에 앉아 있던 창녀, 술집에서 일하는 아가씨들,  시골에서 올라 와 일자리를 찾지 못해 값싸고 독한 중국 술을 마시고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자는 빈민, 우리나라 가요주점과 같은 곳에서 노래하며 술에 취한 아저씨들, 옛날 동화책에 나올 법한 산적 출현 이야기,  나이트 클럽에서 우리나라에서 많이 본 술취한 남자들의 버터 기름 잔뜩 고인 눈빛들, 사원 입장료 때문에 스님과 대판 싸운 사연,  홀로 길을 나섰다가 성추행 당했다는 한국 여성, 관광객에게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텀터기를 씌우는 티베트인 상인들 등 제가 1년 채 안된 시간 동안 머물면서 듣거나 본 라싸에 사는 티베트인들의 일부 모습니다.  당시 제가 경험한 내용은  책이나 방송에서 듣거나 보지 못했던 장면이였습니다.

 

여러가지 환경과 조건이 우리와 다르기에 비교 대상으로는 무리가 있습니다만 우리가 사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입니다. 

 

그러나 제가 일정 기간, 일정 시점에 본 그늘진 면들이 티베트의 전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티베트 불교 사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특별히 티베트 불교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불교에 대해 이렇다 할 이야기를 할 입장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 마음 한 켠에서는 '아 그래도 티베트 불교 스님들은 뭐가 달라도 다를꺼야'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솔직히 있었습니다.

 

쓰잘데 없는 환상을 깨준 계기는 '청전스님의 달라이 라마와 함께 한 20년' 이란 책이였습니다. 몇해 전에 책을  통해 스님이 말씀한 린포체(주로 환생자에게 쓰이는 칭호)의 비리들은 압권이였습니다.

 

티베트 불교 사회를 들여다 보기 시작하면서 까르마 까규빠를 이끄는  17대 까르마빠 환생자 다툼 문제를 비롯한 환생 제도의 불편한 진실들을 접했을 때는 더욱 혼란스러웠고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더 쇼킹했던 사건을 이야기 해 볼까요? 

 

해외 인터넷 자료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충격적인 사실을 지난 해 접하게 됩니다.

 

티베트 불교가 서양에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한 분 중에 깔루린포체(=까루린포체)가 있습니다.   종파를 불문하고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대수행자로 알려진 분이죠.  2대 깔루린포체는 우리 나라를 몇 차례 다녀 가신 적이 있습니다.  2대 깔루린포체의 고백은 충격 그 이상이였습니다.

 

어렸을 때 사원에서 다른 승려들로 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살해 위협 등을 받은 내용입니다.  아래 영상과 영문 텍스트를 링크합니다.

 

☞ 깔루린포체 고백 동영상 : http://www.youtube.com/watch?v=z5Ka3bEN1rs

☞ 깔루린포체 고백 텍스트 :  http://tantrismuskritik.blogspot.jp/2012/01/confessions-of-

                                                  kalu-rinpoche-ive-been.html

 

 

심지어 1대 깔루린포체와 일정 기간 부부관계였다는 서양 여성의 주장이 담긴 해외 자료도 봤습니다. 이것만 놓고 보면 티베트 불교 사회는 엉망진창입니다. 제가 알기에는 언급한 사실외에도 서양에 알려진 그릇된 면들은 더욱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티베트 불교 사회 또한 우리나라 승가처럼 그릇된 욕심이 끼어 들어 청정함을 잃은 예는 적지 않았고 앞으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몇가지 좋지 않은 사실만을 놓고 저는 티베트 불교 전부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림반 푼 어치도 없는 말입니다.  장님이 코끼리 발톱만지고 '야 이게 코끼리야' 소리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티베트 불교는 크고 작은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전통을 이어왔으며 앞으로도 인간 욕심이 끼어 들어 극히 일부의 문제는 있을 수 있겠으나 큰 물길을 거스르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인이 떠난지 54년이 됐지만 아직도 뽀다라 궁전은 티베트인들 가슴에 남아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중국인은 다 나쁜 놈?

 

1949년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주도권을 쥔 후 못된 짓들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티베트가 과거 자신들의 식민지였다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내세워 꿀꺽합니다. 

 

티베트 침략 후 정말 많은 이들이 죽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 침략기를 36년간 격었고 티베트는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시간속에서 100만명이 넘는 티베트인들이 죽었고 지금도 자유를 위한 처절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뉴스에는 굵직한 소식이외에는 잘 소개되지 않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붙잡혀 감옥에 들어가고 그 곳에서 고문을 받아 건강이 악화되거나 죽는 티베트인들 이야기는 해외 매체들을 통해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티베트를 침략하고 탄압하는 중국인 모두를 욕 합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도 그런 말씀을 했듯이 아주 극히 일부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을 갖고 전체를 미워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국내 어느 책에도 실렸듯이 달라이 라마는 그 일부에게도 미움을 갖지 않는 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중국 인민 상당수가 중국 체제 선전과 사상 교육으로 인해 귀가 막히고 눈이 멀어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중도적 접근에 의한 자치방식에 대해 우호적인 중국 지식인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타이완과 홍콩에도 많은 지지자들이 있습니다. 

 

예전에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때 한 시민이 "나는 중국인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중국이 아니다"라는 말을 기사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동감합니다.   약 64년 밖에 되지 않은 중국 공산당이 수천년의 역사를 지녀 온 중국과 동의어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중국 공산당이 아닌 찬란한 문화를 간직해 온 중국을 존중합니다. 앞으로 중국이 티베트와 상호 협력 속에 각자의 땅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티베트에 대한 나쁜 이야기는 무조건 싫다?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미 나름 좋지 않은 면을 겪으면서 스스로 환상과 신비라는 거품은 대부분 빠졌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려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잘못된 부분은 인정해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 티베트라고 할지라도 성역일 수 없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상대하는 매체가 그런 부분을 다뤄도 좋습니다.  근거를 제시하며 있는 것을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굳이 외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가 더욱 문제이겠지요. 그러나, 언론일수록 균형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습니다.  


국내에 나와 있는 티베트에 관한 부정적인 면을 다룬 책 몇 권을 보고 그것을 놓고 전체인 것처럼 말하는 언론을 보면 말문이 막힙니다. 서양인들이 어느 시점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티베트를 좋지 않게 그린 책의 내용만을 들출 것이 아니라뿐 여러 관점을 조합해서 균형있게 써야지요. 

 

제가 만약 티베트의 나쁜 면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면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깔루린포체의 사원내 성추행 사건을 언급하지도 않았겠고 망명 뉴스 매체들이 전하는 뉴스 중 망명 티베트 사회 에이즈 및 마약 문제,  담배로 인한 구강암 환자 등을 비롯해 티베트 불교가 뿌리 내린 부탄 왕국의 승려들이 인도에서 집단 성폭행에 가담했다는 뉴스를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려 놀 이유가 없었겠지요.

 

 

맺음말.

 

제가 보는 티베트 사회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의 모습 또한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앞으로도 그렇다고 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이던 완벽한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제가 언급한 사실과 몇가지 내용들을 더해 책으로 엮는다면 한 권은 거뜬 하겠습니다.  극히 일부의 좋지 않은 면들로 가득찬 그 책을 본 일반인들은 불교 운운하면서도 깨끗한 척 했던 티베트인들은 몹쓸 민족이니 티베트 불교 사회는 엉망이라느니 하면서 두고 두고 전체를 비난하겠지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던 때로는 선이 때로는 악이 순간 순간을 지배하고 서로 뒤엉키며 흘러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입니다.  티베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티베트의 추한 모습을 어느 누가 더 폭로한다고 해서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 땅을 짓밟고 수많은 인명을 빼앗고 자원을 약탈하며 강산을 쑥대밭으로 만든 인류 최악의 역사가 없던 사실이 되지는 않습니다.

 

블로그를 방문하는 분 중에 제가 티베트의 좋지 않은 면은 외면하고 좋은 면만을 내세우며 무조건 우호적이지 않을까 또는 중국이라면 쌍수를 들어 반대하지 않을까 여기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저의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국내 티베트학의 한 획을 긋는 <티베트 비밀역사>

 

티베트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반가운 책이 지난 6월 출간되었습니다.

 

기존 우리나라에 소개된 티베트 역사 관련 서적 중 한국인으로는 다정 김규현 선생님의 2003년 <티베트 역사 산책>에 이어 두번째이고 시대를 한정하지 아니하고 전 시대에 걸쳐 중대한 사건을 담은 통사(通史)로서는 처음입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책)

 

 

 

 

김규현 선생님이 국내 티베트학에 주춧돌을 놓았다면 <티베트 비밀역사>의 저자 박근형 박사는 기둥을 세웠다고 해도 과은이 아닙니다.

 

저자는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중국 사천(四川)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으로 티베트 역사를 선택했습니다.

 

1년 동안 자료를 모으며 심혈을 기울인 흔적들이 책 곳곳에서 보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 동안 알지 못했던 티베트 역사들이 소개된 부분들도 있어 티베트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께는 이 책은 단비와도 같습니다.

 

그 동안 국내에 소개된 역사 관련된 책 대부분은 티베트를 연구한 서양인들의 관점을 담은 번역서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서양인의 관점이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독자입장에서는 좀더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 본 티베트 역사서를 기다려 온 것은 사실이며 더욱이 중국과 이웃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이 쓴 역사서가 반가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중국 정부의 티베트 농노(農奴) 해방에 대한 반박은 통쾌하기 까지

 

중국 정부가 티베트 침략에 대한 명분 중에 하나가 농노 해방이였습니다.  저자는 중국내에서 일반화 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전통 티베트는 대다수 농노가 극도로 고통스럽게 살았던 농노주(農奴主)의 낙원이었다'라는 중국 정부의 오도를 언급하며 이는 명백한 '새빨간 거짓말이다'라고 못을 박습니다.

 

저자는 중국 정부의 홍보에 대한 반박으로 중국내에서 제대로 된 티베트 관련 책을 구할 수 없어 대만으로 부터 구한 서적들을 연구한 결과로 아래와 같이 자신있게 말합니다.

 

다른 책을 통해 14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에 '농노'라는 단어도 없고 개념도 없었다고 말한 부분은 봤지만 중국에서 오래 공부한 전문가의 입을 통해 구체적이고 명쾌한 답을 들으니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장원 거주민은 모두 계약 관계였다. 이것이 우리나라 조선시대 종(노비)과 다르다. 우리나라 

  종은 양반의 소유물이었지만, 티베트 장원 거주민은 그게 아니었다. 귀족 앞에서 계약서를

  찢어 버리고 "나는 나간다!" 외친 뒤 밖에서 유목생활을 하거나 장사하면서 살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귀족이 장원 거주민을 착취할 수 없었다. ....(중략)  전통 티베트는 하층민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티베트어로 '체요'라고 부르며, 체요의 중국

  번역은 농노(農老)다. 하지만 이 번역이 틀렸다. 체요는 농노가 아니라 죄수다. 그것도 일

  잡범이 아니라 흉악범이다. 부모살해와 승려살해 이것은 중죄 가운데 중죄였다. 그런데, 티

  베 트는 사형이 없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평생 장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무기징역이였던

  것이 다. 일하는 시간이 아니면 수갑과 족쇄를 찬다. 체요는 그야말로 극소수였다.】

 


 

 

 

중국 정부는 선전용으로 사연을 알 수 없는 사진들을 이용해 자신들이 티베트 농노를 해방시켰다고 한다.  좋다. 그들 말대로 농노를 해방했다고 치자. 그러면 해방된 티베트인들은 그들의 체제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왜 120만명이 굶거나 싸우거나 고문 등으로 죽었고 2009년 이후 현재까지 120명의 티베트인은 왜 분신하는지에 대해 '달라이 라마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유통기한 지난 맛간 선전은 그만하고  명쾌한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또한 년간 1천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티베트에 밀려 들어와 쓰고 간 막대한 관광 이익은 누구를 위해 쓰이고 있는가? 해방이라고 떠들지만 중국은 티베트인들은 현대판 노예로 전락시켰다.

 

(사진/불가리아 중국대사관)

 

 

 

일부 실수는 극히 지엽적인 문제일 뿐.

 

한국내에서 티베트를 소개하는 책들이 그 동안 많이 소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편식은 심했습니다.  주로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티베트 불교 관련 서적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에 반해 역사 , 문화 관련 서적은 상대적으로 적은 가운데 이번에 선 보인 <티베트 비밀역사>는 스스로 통사(通史)라고 자신한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최초의 신화부터 현대 티베트 역사까지 골고루 다루었으며 저자가 중국 대학에서 공부를 마쳤지만 한 쪽으로 쏠리지 않고 객관적이고 냉철한 관점을 유지하려 애쓴 점들은 특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아주 극히 일부에선 실수가 있었습니다.  제5장 전기 겔룩시대에서 다룬 불교 '조낭파'에 대한 제5대 달라이 라마의 종교 탄압으로 조낭파 사원은 모두 사라지고 동부 티베트 한 곳만 살아 남았다고 한 부분은 사실과 다릅니다.  

 

조낭파운데이션(http://jonangfoundation.org) 사이트에 따르면 티베트 암도, 캄 지역에 약 50여 곳, 중부에 약 5개의 사원이 있으며,  인도 북부 쉼라에도 조낭파 사원이 법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www.jonangmonasteryshimla.com)

 


 

인도 북부 심라의 조낭파 '딱땐 푼촉 최링 사원'(Takten Phuntsok Choeling)의 승려들

 


 

참고로 조낭파는 공식적으로 부활했습니다.  1991년 14대 달라이 라마에 의해 티베트 망명 정부의 종교부내 몽골 불교 지도자로 몽골의 달라이 라마로 불린 제9대 제쮠담빠린뽀체를 임명했고 1994년 티베트 암도에서 열린 '조낭파' 회의에도 제쮠담빠린뽀체가 달라이 라마 메시지를 갖고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 참고. 티베트 망명정부, 제쮠담빠린뽀체 입적 애도 성명(2012년 3월 1일)

     http://tibet.net/2012/03/01/obituary-his-eminence-the-ninth-khalkha-jetsun-

    dhampa/

 

 


또한, 10장 보이지 않는 새물결의 '구르카 전쟁'을 논하면서 전쟁의 원인으로 거론된 '10대 홍모파 까마빠는 제10대 튀쿠를 끌으로 맥이 끊겼다'라고 했지만 다시 부활되어 현재 미팜 최끼

로되(1952년생, Mipham Choky Lodro)가 14대 샤마르(Shamar) 린뽀체로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 사이트 : http://www.shamarpa.org/)

 



 

 

까르마 까규빠의 제14대 샤마르 린뽀체.  17대 걀왕 까르마빠 환생자 인정 과정에서 다른 3명의 고위 승려들이 인정한 1985년생 '오갠 틴래 도제'를 부인하고 1983년생 '틴래 타예 도제'를 옹립했다.  까르마빠 논쟁은 14대 달라이 라마가 오갠 틴래 도제를 공식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까르마 까규빠 종단내에서 아직도 진행중이다.

 



 

<티베트 비밀역사>의 출간으로 국내 티베트학이 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기를.

 

지난 3월, 티베트에 대한 문제점을 그린 <샹그릴라의 포로들>이란 책이 출간되자 여러 언론에서 티베트에 대한 환상을 깨라는 식으로 다룬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출판계에서 비인기 종목인 '티베트' 관련 서적을 이렇게 까지 관심을 갖은 사례는 많지 않은데 이례적입니다.

 

서점에서 <샹그릴라의 포로들> 책을 사려고 뒤적거리다가 손에서 놨습니다.  환상과 신비를 깨는 식의 마케팅이 그다지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약 15년전에 출간되었던 원문 서적이 이제 국내에 출간되며 관심을 끈 이유를 여러분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겠지요.

 

티베트에 대한 환상과 신비를 깨는 실질적인 내용을 담은 책들은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습니다.  <티베트 비밀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불편할 정도로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억지스럽게 사실을 감추거나 미화시키는 것 보다 자연스럽고 좋았습니다. 

 

티베트 마니아로서 <티베트 비밀역사>를 통해 알려지지 않거나 또 다른 관점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 티베트학에서 또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티베트 비밀 역사, 이 책과 함께 보면 좋습니다.>

 

 

기자 출신인 토머스 레어드가 17개월간 달라이 라마를 여러 차례 직접 만나 티베트 역사에 대한 인터뷰를 중심으로 엮은 책입니다.  토머스 레어드는 불교 신자가 아니고 전문 기자입니다. 만약 저자가 불교 신자였다면 신심에 막혀 기자가 갖고 있는 날카로움이 무뎌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염려가 없습니다. 거침없는 질문과 소탈한 답변이 백미입니다.

 


티베트 이야기

저자
토머스 레어드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08-05-02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달라이라마, 조국 티베트의 역사와 영광, 슬픔을 이야기하다 신...
가격비교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13일에 이어 27일 한겨레에 실린 정문태 기자의 티베트 달라이 라마 비난 기사에 대해 반박글을 올렸고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정웅기 운영위원장 (전 티베트 평화연대 대변인)을 중심으로 티베트를 지지하는 분들이 연대해 한겨레측에 진실을 은폐하고 독자들에게 왜곡된 사실을 알린 것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으며 끝내 한겨레는 27일자에 정정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2013년 7월 28일, 인도 남부 뿌네에서 열린 행사에서 뿌네 전통 터번을 선물받은 후 머리에 쓴 14대 달라이 라마 (사진/달라이 라마 공식 사이트)
  

 

 

 

27일, 정문태 기자의 달라이 라마를 비난하는 두번째 칼럼 <CIA의 비밀작전, 상처는 컸다>에 대해  기자의 관점에 대해 티베트 사회를 잘못 이해한 점에 대해 재차 반박글을 올린 바 있습

니다.

 

 


그러나,  기자가 제시한 일부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한 사실을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정문태 기자,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한 속셈은 무엇일까?

 

<상편> '환상을 먹고 자란 세계 우상'에 이어 <하편> 또한 오류 투성이입니다. 이는 전문가의 칼럼이 아니라 작가 지망생의 습작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하편> 'CIA의 비밀작전, 상처는 컸다'에서 역사를 언급하며 기자가 제시한 내용 중 1951년 7월 16일, 중국 장징우 장군이 14대 달라이 라마가 피신해 있던 야뚱지역을 방문했고 대화를 나눈 후 달라이 라마는 라싸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 9월 28일, 달라이 라마 특사에 의해 티베트 평화 해방 17조 협정을 맺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가 알던 사실과 전혀 달랐습니다. '혹시 내가 잘못알고 있는 것일까?' 의심되어 갖고

있는 아래 티베트 관련 도서 책을 모두 뒤져 봤습니다.  모든 책은 달라이 라마가 라싸에 돌아와 티베트 대표단을 베이징에 파견해 조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인도 국경 야뚱에 피신해 있을 때 티베트 평화 해방 17조 협정을 맺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정기자는 발생 사실을 앞뒤로 바꿔버렸습니다. 

 

 

■ 참고 도서

 

티베트 불교사(야마구치 즈이호, /야자키 쇼켄, 1990, 민족사), 달라이 라마 자서선 '유배된 자유를 넘어서'(달라이 라마, 정신세계사, 1991), 티벳속으로(여동완, 2000, 이레), 티베트 역사산책(다정 김규현, 2003, 정신세계사),  달라이 라마 평전(질반 그라스도르프, 2005년, 아침이슬),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폴 인그램, 2008, 알마),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토머스레어드, 2008년, 웅진지식하우스), 달라이 라마 평전(클로드 B. 르방송, 2008년, 바움), 달라이 라마 나는 미소를 전합니다.(달라이 라마 | 소피아 스트릴르베 엮음, 2011, 고즈윈), 1만년의 이야기 티베트(지토 편집부, 새물결)

 

 

                                                     14대 달라이 라마 주요 연표

                                                                 (1935~1960)

  

       

책. '달라이 라마 나는 미소를 전합니다.' 에 나오는 연표를 중심으로 위 참고 도서내용에서  일부 발췌

    

1933 12 17

 

13대 달라이 라마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다.

 

1935 7 6(0)

 

티베트 북동부 암도 지방의 시골 마을 딱체르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다. 이름은 소원을 들어주는 여신이라는 의미의 하도된둡. 일곱 형제 자매 중 다섯째로, 큰 형은 세 살에 24대 딱체르 린뽀체의 환생자로 인정받은 툽땐 직메 노르부(1922~2008)이고, 막내 동생 땐진 최걜(1946~)은 응애리 린뽀체의 환생자이다.

 

1939(4)

 

14대 달라이라마 ‘땐진 갸초’(1935~) 환생자로 공식 인정받는다. 10 8일 라싸에 도착한다.

 

1940(5)

 

2 22 14대 달라이 라마로 즉위해 잠뺄응악왕롭상예쎼

땐진갸초라는 이름을 받지만 성인이 아닌 까닭에 제5대 라뎅 린뽀체인 잠뺄예쎼걜첸(1910~1947)이 섭정으로 그를 대신한다. 6대 링린뽀첸 툽땐롱똑남걜틴래(1903~1983) 3대 티쟝 린뽀체인 롭상예쎼땐진갸초(1900~1981)에게 승려로서 교육받기 시작한다.

 

1946(11)

 

영화 티벳에서의 7년 주인공, 오스트리아인 하인리히 하러(1912~2006)와 만난다.

 

1949(14)

 

10 1일 마오쩌둥(1893~1976)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한다.

 

1950 (15)

 

10 7일 중국인민해방군 4만명이 티베트를 침공한다. 당시 티베트군 병력8천명 중 4천명이 목숨을 잃는다. 이틀만에 참도지역이 함락된다.

 

11 7일 국제연합의 개입을 요청하나 거부당한다.

1117 14대 달라이 라마 정식으로 티베트의 통치권자가 된다.

1216일 중국군을 피해 도모(야뚱)로 피신한다.

 

1951(16)

 

5 23, ‘티베트 사람들은 모국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로 시작되는, ‘티베트 평화 해방의 방법에 관한 협의를 위한 17조 협약’이 베이징에서 티베트 대표단에 의해 달라이 라마를 배제한 채 체결된다. 달라이라마는 피신지역에서 라디오를 통해 이 소식을 듣는다. 당시 달라이 라마 의 국새는 야뚱으로 갖고 갔으며 중국 정부는 도장을 위조해 협정서에 날인

6 16일 중국 장징우 장군을 대표로 한 대표단이 피신 지역 야뚱에 도착해 달라이 라마를 만난다.

7 24일 티베트 국민의 종교적, 개인적 자유를 보장받는다. 라싸로 돌아온다.

10 26일 중국인민해방군 3천 병력이 수도 라싸에 입성하고 뒤를 이어 추가 병력까지 모두 2만명이 라싸에 주둔한다.

 

1954(19)

 

노르부링까 궁에서 처음으로 칼라차크라 입문 의식을 집전한다.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을 만난다. 이듬해 6월까지 중국에 머문다.

927일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다.

 

1956(21)

 

2월 리탕에서 티베트인이 중국군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군은 티베트인들이 피신한 리탕의 사원을 64일 동안 포위해 공중 포격을 가한다.

6월 티베트 자치구 준비위원회 정식 발족

11월 붓다 열반 2,500주년 축전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를 방문하다. 이듬해 3월까지 인도에 머문다.

 

1958(23)

중국이 캄과 암도를 완정히 장악한다.

1959(24)

 

2월 묀람(기도회) 동안 조캉 사원에서 최종 시험을 치르고 게쎼하람빠(불교철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3 10일 중국인민해방군의 달라이 라마 위협 소문이 퍼지자 만명 정도의 티베트인들이 노르부링까 궁으로 모여든다. 박격포탄 두발이 노르부링까 궁 연못에 떨어지고 티베트인들 봉기가 시작된다.

317일 밤 병사로 변장하고 라싸를 탈출한다.

330일 인도 영토에 도착한다.

429 17개조 협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무수리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설립한다.

 

1960(25)

 

4 30일 무수리에서 옮겨와 다람살라에 둥지를 튼다. 1959 3월부터 1960년까지 티베트인 약 8만명이 달라이 라마 뒤를 이어 인도로 망명한다.

 

 

   

정기자가 제시한 날짜도 엉망입니다.  베이징을 방문한 티베트 대표단은 중국 정부의 '서명이냐 아니면 전쟁이냐'라고 협박하는 중국 앞에서 권한이 없는 대표단이 무기력하게 서명할 수 밖에 없었던 '티베트 평화 해방 17조'가 체결된 날짜는 위 연표에 나온대로 1951년 5월 23일 입니다. 그런데, 정기자가 7월 16일에 중국 장군이 야퉁을 방문해 달라이 라마를 만났고 이후 달라이 라마는 라싸로 돌아왔으며  이후 9월 28일에 조약 체결이 되었다고 하는 주장의 근거는 책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으며 혹시나 실수로 날짜를 헷갈렸을까 싶어 1951년 앞뒤로 7월 16일이나 9월 28일이란 날짜에 특별한 일이 발생했나 찾아봐도 이렇다 할 큰 사건은 없었습니다.

 

또한,  망명 티베트 공식 일본/동아시아 대표부 사이트(http://www.tibethouse.jp/)에서도 협정이 맺어신 시기를 1951년 5월 23일로 말하고 있으며 심지어 지난 2011년 1월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내용을 국내에 출판해 문제시 되었던 '1만년의 이야기 티베트'에도 조약이 맺어진 시기에 대해 1951년 5월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실수일까요?

 

만약 정기자가 제시한 역사적 사건 발생 시기들이 뒤바뀌지 않은 채 날짜만 실제와 앞뒤로 조금씩 틀리거나 했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인턴 기자도 팩트는 중요시하는 기본중에 기본인데 하물며 20년 이상 활동해 온 기자가 아주 기본적인 사실들을 모르고 글을 썼을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기자는 티베트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티베트 평화 해방 17개 협정'이 어떻게 맺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달라이 라마가 중국 위협을 피해 피신 상태에 있던 상황이 아니고 라싸로 돌아와 정상적인 상태에서 보낸 특사가 협정에 서명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사건 발생 순서를 뒤짚어 놓은 속셈은 무엇일까요?

 

■ 정문태 기자의 <하편> 칼럼 中

 

 (1951년) "그러나 7월16일 중국 정부의 티베트 책임자 장징우 장군이 야둥으로 찾아와 대화를 나눈 뒤 달라이 라마는 라싸로 되돌아갔다. 그 뒤 9월28일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라는 점과 티베트 정부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티베트의 평화적 해방을 위한 17개항 협정’에 마오쩌둥과 달라이 라마 특사가 서명하면서 1911년 청조의 붕괴와 함께 13대 달라이 라마가 선언했던 독립국 티베트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1954년 달라이 라마는 베이징에서 열린 제1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해 부상무위원장이 되었고, 1955년 3월 티베트 자치정부를 구성할 티베트자치지역최종설치준비위원회(PCART) 설치안에 서명했다. 1956년 4월22일 라싸의 포탈라궁 아래서 달라이 라마와 마오가 파견한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설치준비위가 공식 출범함으로써 티베트는 중국의 자치구가 되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망명 뒤, 앞선 ‘17개항 협정’이 강박상태에서 체결되었고 자신의 도장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해 왔다."

 

 

 

달라이 라마가 나중에 딴소리한다는 식으로 몰기 위한 교묘한 속임수

 

 

아래에서 참고 자료에서  보듯이 17조는 중국의 대티베트 사기극이였고 티베트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치밀한 계획속에 진행된 중대 사건이였습니다.

 

정기자는 1951년 당시 16세에 불과했던 14대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침략을 피해 야뚱으로 피난해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닌 라싸에 돌아와 정상적인 상황에서 티베트 대표단을 베이징으로 보내 '티베트 평화 해방 17조'를 체결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기자로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역사적 사실를 조작했습니다.

 

이는 정기자가 달라이 라마가 중국 정부에 협조한 사실들을 열거하며 망명 뒤 17조 협정을 강박상태에서 체결되었고 자신의 도장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한다며 마치 달라이 라마가 나중에 딴소리한다는 식으로 독자들을 유도하기 위한 교묘한 속임수에 불과하며 끝까지 달라이 라마에 대한 비난의 속셈을 감추지 않고 있음을 뜻합니다.

 

 

한겨레와 정문태 기자는 해당 사실에 대한 진실을 밝히십시오.

 

<상편> '환상을 먹고 자란 세계의 우상'에서 정기자는 달라이 라마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 입한번 뻥긋 한 적이 없다고 해서 인터넷 뉴스 검색을 해보니 아프가니스탄 전쟁 난민을 위해 기부금을 냈는가 하면 미국 911테러 사태 발생부터 이라크 전쟁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온 것을 알 수 있었고 또한 1998년 애플컴퓨터 광고에 달라이 라마가 출연한 것을 놓고 지금까지 종교지도자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유일하게 광고에 나온 사건이였다고 단정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 보니 당시 같은 광고에 넬슨만델라, 마틴 루터 킹 목사 등 2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도 출연했고 이후 다른 기업 광고에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나온 사례도 있었습니다.

 

<하편>에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운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외국 서적들의 출처를 밝히며 자신의 전문성을 강조하고자 했으니 이번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서도 베테랑 기자답게 주장을 뒷받침 할 근거를 제시하십시오.

 

20년 전문 기자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달라이 라마를 비난한 두 편의 칼럼에서는 전문성, 객관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보였으며 티베트 현대 사회에 대한 저속한 인식 수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한겨레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전 글에서 <정정 기사>로 일단락했지만 이어진 칼럼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은 계속되고 있으며 불신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책임있는 언론으로서 어떻게 문제의 글들을 여과없이 게재하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지 도대체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겨레와 정문태 기자는 <정정 기사>가 아닌 <사과문>을 1면에 게재하십시오.  독자를 기만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려 한다면 한겨레를 사랑해왔던 독자들은 결국 등을 돌리게 됩니다.  지난 온 시간 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시간이 더 많이 남아 있기에 이제라도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십시오.

 

 

 

 

(참고) 중국의 대티베트 사기극, '티베트 평화 해방 조약 17조'
 
1951년 4월, 티베트 국가 수반인 14대 달라이라마 '땐진 갸초'(1935~)는 당시 동부 티베트 '참도'지사였던 '응아뾔 아왕 직메'(↓Ngapoi Ngawang Jigme, 1910. 2. 1.~ 2009. 12. 23)를 수석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 5명을 중국 베이징에 파견했으며  중국 대표단은 '리웨이한'(1896~1984)을 수석대표로 하는 4명이였습니다. 대표단에게 주어진 권한은 티베트의 공식 입장을 이야기하고 중국 정부 의견을 들어본 후 중대한 사항에 대한 결정은 티베트 본국 지시를 따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1951년 4월 29일부터 5월 21일까지 네차례에 걸쳐 회담이 진행되면서 중국측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조약 17조 전문에 대해 서명할 것을 강요당한 티베트 대표단은 본국 정부에 연락을 취하려고 했으나 이를 허락해 줄 중국 정부가 아니였습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대표단에게 위협을 가하고 강제적으로 서명토록 하자 견디지 못한 대표단은 서명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책임으로 할 뿐, 달라이라마와 티베트 정부를 구속하는 효력이 없다는 것을 중국 정부에게 확인을 받았으나, 티베트 침략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급급했던 중국정부에게는 어림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또한,  티베트 대표단은 국가간 조약에 필요한 '국새'도 없었습니다.  14대 달라이라마가 티베트 남부 '야뚱'으로 피할 당시 대표단에게 권한을 주지 않기 위해 '국새'를 갖고 왔습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평화 해방'을 위해 1951년 5월 23일 협정이 체결됐다고 27일 세계에 알렸으며, 당시 피신해있던 14대 달라이라마는 티베트를 고통으로 몰아 넣은 이 엄청난 소식을 중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들어야만 했습니다.

 

 

티베트 해방 협의 17조에 명시된 날짜가 1951년 5월 23일로 되어 있다. 한겨레 정문태 기자는 도대체 어떤

근거로 날짜를 조작했을까?

 

(이미지/위키피디아)

 

 

           중국 인민정부와 티베트 지방정부의 평화적인 티베트 해방에 관한 협의 17조 전문

 

 

      1. 티베트 인민은 단결하여 티베트에서 제국주의 침략 세력을 몰아낸다. 티베트 인민은 모국인 중화인민

         공화국의 가족안으로 돌아온다.

 

     2.  티베트 현지 정부는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에 들어가 국방을 강화하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3.  중국인민정치자문위원회 공동 강령에 기재된 민족주의 정책에 따라, 티베트 인민은 인민중앙정부의

           통합적 주도 아래 민족적, 지역적 자치를 행사할 권리가 있다.

 

     4.  중앙정부당국은 티베트의 현재 정치 체제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또한 중앙정부당국은 달라이라마의

          현재 지위와 역할, 그리고 권한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직급의 관리들이 평상시 직위를 유지

          할 것이다. 

 

     5.  뺀첸(판첸)라마1의 현재 지위와 역할, 그리고 권한은 그대로 유지된다.

 

     6.  달라이라마와 뺀첸라마의 현재 지위와 역할, 그리고 권한이라 함은 13대 달라이라마와 9대 뺀첸라마

          가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때의 지위, 역할, 권한을 의미한다. 

 

    7.  중국인민정치자문위원회 공동 강령에 기재된 종교적 자유의 정책은 이행될 것이다. 종교적 신앙, 티

         베트 인민의 전통과 관습은 존중받을 것이며, 불교 사원들은 보호받을 것이다. 중앙 부당국은 사원

         재원에 손대지 않을 것이다.

 

    8.  티베트 군대는 단계적으로 인민해방군내에 편입되고, 중앙인민정부 국방 세력의 일부가 될 것이다. 

 

    9.  티베트 민족 교육과 구어와 문어는 티베트의 현실 상황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10.  티베트의 농업, 가축 사육, 산업과 상업은 단계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며, 인민의 생계수단도 티베트

        의 현실 상황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개선시킬 것이다.

 

  11.  티베트에서 행할 다양한 개혁과 관련해서, 중앙정부당국의 강제는 전혀 없을 것이다. 티베트 현지

        정부가 그 의사대로 개혁을 실행할 수 있으며, 인민측에서 개혁을 요구할 경우, 티베트의 지도자

        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12.  과거 친제국주의 혹은 친국민당 인사의 경우, 그들이 제국주의와 국민당과의 관계를 결연히 청산

        하고 파업이나 저항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과거에 관계없이 지위를 유지해도 좋다.

 

  13.  티베트에 진입하는 인민해방군은 위에서 언급한 정책을 모두 준수할 것이며, 물건을 사고 파는데

        정당한 거래를 하고 인민에게 속한 바늘 하나, 실 한 타래라도 독단적으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

 

  14.  중앙인민정부는 티베트 지역의 모든 대외문제를 책임질 것이다. 인접국과는 평화적으로 공존할

        것이며, 평등, 상호이익, 영토와 주권에 대한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공정한 통상 관계를 수립하고

        발전시킬 것이다.

 

  15.  협의안 이행을 보증하기 위해, 중앙인민정부는 티베트에 군사와 행정위원회, 군사지역 본부를 설

        치 할 것이며, 중앙인민정부에서 파견한 인사 이외에도 가능한 한 많은 현지 티베트인이 업무에

        참여하도록 할 것이다. 군사와 행정위원회에 참여하는 티베트 인사에는 티베트 현지 정부 구성원

        이었던 애국자나 다양한 지역, 다양한 종파를 배경으로 하는 이들도 포함될 것이다. 중앙인민정

        부와 여러 관련 지역 대표자들의 협의를 거쳐, 인사 명부가 곧 준비될 것이며 중앙인민정부의 승

        인을 통과할 것이다.

 

 16.   군사와 행정위원회, 군사지역 본부, 티베트 주재 인민해방군에 들어가는 자금은 중앙인민정부

         에서 댈 것이다. 티베트 현지 정부는 인민해방군이 식량과 사료, 그외 생필품을 구입하고 운송

         하는 일을 도와야 한다.

 

 17.   이 협의안은 서명과 날인이 끝나는 즉시 효력을 발휘한다.

 

 

 

14대 달라이 라마, 더 큰 피해 막기 위해 라싸로 귀환
 
인도 국경과 인접해 있는 '야뚱'에서 슬픈 소식을 라디오로 들어야만 했던 14대 달라이라마는 많은 고민에 휩싸이게 됩니다.  달라이 라마는 한국 전쟁을 치르고 있던 미국이 많은 희생을 치르며 언제까지 티베트를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언젠가는 또 다시 티베트는 홀로서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점 특히 무엇보다도 전쟁을 하게 되면 티베트인, 중국인 등 수많은 인명피해가 뒤따를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해 야뚱을 떠나 티베트 라싸로 돌아옵니다.
 


처음에는 17조 협의를 지키는 듯 했으나 본색을 드러낸 중국


1951년 9월 9일, 약 3,000명의 중국 인민 해방군이 라싸로 무혈입성하고 뒤이어 추가 병력까지 약 2만명의 중국인민해방군이 티베트의 심장에 주둔하게 되었는데 당시 기록에 의하면 라싸 주민의 인구는 5만명 정도였습니다.


자칭 '티베트 평화 해방 조약' 14조에 의하면 인민해방군은 정당한 매매행위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인민의 것을 함부로 빼앗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티베트 정부가 공급하는 식량에 대해 값을 치르고 사무실로 쓰기 위한 임대 건물 보상을 하는 등 17조 협정내용을 지키는 듯 했지만 이러한 보상체계는 곧 무너졌고 식량과 숙소를 당연한 권리처럼 요구했습니다. 갑자기 불어난 라싸 인구로 티베트의 빈약한 물자는 바닥이 났으며 곡물가가 두 배이상 폭등하는 등 심각한 위기가 닥쳤습니다. 티베트인들은 분개했으며 침략자에 대한 소극적인 증오는 공공연한 조롱으로 까지 발전했습니다.
 
1955년 여름, 달라이라마는 캄과 암도지방에서 불안한 소식들을 접하게 됩니다.  중국이 당초 협정내용과는 달리 일방적인 개혁을 시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였습니다.  사원 재산, 가옥과 토지, 가축들에게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고 대토지들은 몰수되어 중국 기간 요원들에 의해 재분배 되었습니다. 또한, 중국측이 보기에 야만적이고 비위에 슬렸던 유목민들을 붙잡아 들이기 시작했고 오랜 전통의 불교 활동을 심하게 방해하며 주민들에게 종교를 반대하도록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서서히 그들은 야욕을 드러내며 야만의 역사는 반세기가 넘도록 계속되고 있습니다.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박근형 2013.07.31 17:4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처음으로 한국인이 한국인의 눈으로 쓴 티베트통사. 가장 객관적인 티베트이야기.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240394

7월 13일, 달라이 라마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으로 시작된 두번째 칼럼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에 대해 평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던 분들 그리고 막연하게 달라이 라마를 알고 있던 분들 모두에게 충격적인 기사가 7월 13일 한겨레에 실렸습니다.  정문태 기자는 '달라이 라마가 이란, 이라크 전쟁에 대해 입한번 뻥끗한 적이 없다' 거나 '1998년 애플컴퓨터 광고에 출연해 지금까지 종교지도자나 노벨평화상 수상 중 유일하게 얼굴을 내민 사건이였다'며 비난하고 해외에서 오래전부터 떠돌던 가십거리에 불과한 이야기를 언급했습니다.  


 

1959년 망명 길에 오른 14대 달라이 라마의 나이는 24세 였다. 인도에 도착한 달라이 라마는 "머리 위의 하늘과 발밑에 땅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며 당시 막막했던 심정을 후일 털어놓았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된 달라이 라마는 올해 4월, 티베트인을 대상으로 한 법회에서 2-3년안에 티베트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며 귀국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사진/달라이 라마 공식사이트)

 

 

 


해당 사실들을 확인한 결과 전혀 근거없는 내용임을 확인하고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정웅기 운영위원장(前 티베트 연대 대변인)을 중심으로 티베트에 관심을 갖고 있던 분들의 항의 서한이 한겨레측에 전달되었고 한겨레와  27일 정정기사를 통해 유감을 표명했으며, 가까운 시일내에 우리측의 반박 내용은 지면을 통해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한겨레, "
바로잡습니다"


2013년 7월13일치 이 칼럼에서는 “(달라이 라마는) 미국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 입도 뻥긋한 적이 없다”고 썼으나, 그가 전쟁과 관련해 미국에 대한 비판적 성명을 여러 차례 발표한 사례가 있어 바로잡습니다. 또한 “(달라이 라마가 1998년 애플컴퓨터 광고에 등장한 것은) 종교지도자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도 지금까지 유일하게 기업광고에 얼굴을 내민 사건이었다”고 쓴 바 있으나, 이 대목 역시 당시 애플컴퓨터 광고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틴 루터 킹(1963년), 넬슨 만델라(1993년)가 출연한 바 있어 사실이 아니기에 바로잡습니다. 아울러 칼럼에서 달라이 라마의 사생활을 언급한 부분에 대해 적대자들의 비방을 일방적으로 옮겨 달라이 라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독자들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달라이 라마를 비난한 칼럼은 당초 <상편>과 <하편>으로 연재될 계획이였고 13일에 이어 27일자에 <CIA 비밀작전의 상처는 컸다>라는 제목으로 마지막편이 실렸습니다. 당초 <상편>에서는 다음 편의 제목이 ‘세계 평화 속에 감춰온 비밀작전’으로 예고되었으나 상편에서 팩트를 왜곡한 후 적지 않은 파문이 뒤따르자 'CIA 비밀작전의 상처는 컸다'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게재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인지 <하편>은 논점을 잃고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심지어 일부 인용문 출처를 표시한 부분에서는 제목을 적지 않거나 하는 식으로 무성의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또한

기자의 주장은 현대 티베트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 달라이 라마의 신정체제라는 구틀에 묶여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국제분쟁 전문기자로 20년 넘게 전쟁을 취재한 베테랑이란 사실을 존중하나 스스로 피지배자, 소수, 약자 쪽에서 역사를 보겠다는 내세운 원칙에 따라 달라이 라마와 그 안에서의 피지배자인 티베트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말하려 했지만 사실을 왜곡하며 지나친 오만과 편견으로 달라이 라마를 폄하해 중국 정부가 주장하는 날빠진 비난의 수준을 되풀이한 꼴이 되어 오히려600만 티베트인들과 우리와 비슷한 침략의 역사를 겪고 있는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해 온 많은 한국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13일에 이은 27일자 칼럼에서는 "중국의 무력정책이나 유혈통치를 비난하면서 티베트인의 자유 투쟁을 지지해왔다"고 밝히며 "그럼에도 티베트의 상징인 달라이 라마를 이전 글에서 비판적으로 다뤘던 까닭은 역사적으로 달라이 라마라는 신정체제가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절대권력이였기 때문"이라는 어색한 변명이 이어졌지만 아무리 절대권력이였다 하더라도 사실을 왜곡하면서 까지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고 오히려 솔직히 사과했다면 누구나 실수와 잘못은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인간적으로 느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2011년 3월 20일,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 정부를 이끌 행정부 수반과 국회격인 티베트 망명 의회 지역별 대표를 뽑는 투표장에서 그린카드(망명 티베트인 신분증)를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승려들.   열흘전 14대 달라이 라마 땐진 갸초는 약 400년간 이어 온 신정체제의 종지부를 찍는 '달라이 라마'의 정치 완전 은퇴와 정권 이양을 발표했다.   마침내 14대 달라이 라마가 즉위 이후 개혁을 꿈꾼 그 열매가 열리는 날이였다. 이날 직접 선거로 선출된 68년생의 롭상 쌍걔는 많은 티베트인의 기대와 희망을 안고 정치 지도자로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AP)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청년 회의

 

정문태 기자는 기사에서  "티베트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는 티베트청년회의(TYC, Tibetan Youth Congress)를 비롯한 젊은층에선 달라이 라마의 독립 포기와 무장투쟁 부정에 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따라서 달라이 라마라는 압도적인 체제가 만들어온 눈길 대신 시민의 눈으로 티베트를 보고자 했다"면서 마치 지금도 달라이 라마의 절대 권력이 계속되고 있다라는 상상을 이끌어 내고 있지만 이는 과거의 틀에 갖혀 현대 티베트 사회를 피상적으로 접근한 관점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대목입니다.

 

보통 우리는 의견이 다르면 대립이라는 구도를 만들어 서로가 상당히 껄끄럽고 상황에 따라서

는 분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을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TYC가 달라이 라마 중도 정책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냈지만 달라이 라마는 정기자 표현대로 절대권력으로 생각의 차이를 묵살하거나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았음을 아래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

니다.

 

 ① 달라이 라마가 독립을 포기하고 '중도적 접근'에 의한 고도의 자치를 결정한 것은 독단이 

     아닌 민주적 절차에 의해 동의를 받은 것입니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공식 홈페이지 [각주:1]

     '중도 정책'(中道, The Middle-Way Policy)에서 자세한 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도적 접근에 의한 고도의 자치

 

14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평등과 상호 협력을 기반으로

티베트인과 중국인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 실현을 목표로 제창한 정책으로서 1970년대 망명정부 내각, 망명 의회, 학자들과 논의가 계속 되어 왔으며 마침내 1979년 중국 덩샤오핑이 "독립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문제는 대화로 해결될 수 있다"고 먼저 제안해오자 과거 오랜 시간 고민해왔던 티베트, 중국 모두에게 유익한 중도 정책과 자신의 신념이 일치하다고 판단한 달라이 라마는 논의에 동의하고 독립을 통한 자유 회복에서 중도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해 티베트 망명 의회, 까샥(내각), 학자 등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과 공식적인 협의에 들어갔습니다.

 

명실상부한 자치 협상의 토대가 된 1988년 6월 15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 의회에서 행한 달라이 라마의 연설 내용은 같은 해 6월 6일부터 4일간 인도 다람살라에서 열린 특별 회의를 통해 각계 의견 수렴을 통해 사전 합의된 내용이였습니다.

 

 

                              "1988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연설문"

 

저는 항상 티베트 국민에게 말해 왔습니다. 고통을 끝내기 위해 노력은 하더라도 절대로 폭력에 의존하면 안된다고요. 그렇지만 한 민족이 정의롭지 못한 처사에 항거할 도덕적 권리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행히도 티베트에서 일어난 시위들은 중국 군대와 경찰에 의해 힘으로 진압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비폭력을 계속 강조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이 폭력적인 방법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앞으로 악화되는 상황의 책임을 티베트인들에게 물을 수는 없을것입니다.

 

티베트의 비극을 종식시킬 현실적인 해법을 저는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왔습니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내각은 물론이고 수많은 지인들과 관련 인사들의 의견도 물었습니다. 이리하여 1987년 9월 21일, 워싱턴 미국 연방의회 인권위원회에서 연설하면서 '평화 계획 5항'을 발표했던 것입니다. 그 내용에서 저는 티베트를 평화지구로, 즉 인간과 자연이 조화 속에 더불어 살 수 있는 성소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또한 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주의의 이상을 존중하며 환경을 보호하고 티베트에 중국인 이주를 중단하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평화 계획 5항'은 티베트인과 중국인 간의 진지한 타협을 호소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티베트인들이 먼저 발표했고, 이런 방안으로 티베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3개 지방(위/짱, 암도, 캄)을 포함한 티베트 전역에는, 공동의 안녕과 환경보호를 위해 전체 국민의 동의를 얻어 합법적이고 자치적인 민주 정체(政體)가 수립되어 중국과 연결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 해도 티베트의 대외 정책에 대한 책임은 중국이 계속지게 될 것입니다. 한편 티베트 정부는 상업, 교육,문화, 종교, 관광, 과학, 스포츠 및 비정치적 기타 활동 부문에서 자국 외무부를 통해 관계를 발전시키고 유지해야할 것입니다.

 

어떤 사회든 개인의 자유가 진정한 발전의 원천이므로, 티베트 정부는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을 충분히 살려 이 자유를 보장하는 데에 힘쓸 것입니다. 이때 인권에는 표현, 집회, 종교의 권리가 모두 포함됩니다.  티베트라는 나라의 정체성의 원천은 종교이며, 풍요로운 티베트 문화의 핵심은 정신적 가치이므로, 이런 것들을 잘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티베트 정부는 각별히 유념할 것입니다.

 

티베트 정부는 야생동식물군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법령을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자연자원을 마음대로 개발, 이용하는 행위에 조심스럽게 제약을 가해야 할 것입니다. 핵무기 및 기타 무기의 생산, 실험과 비축은 금지해야 할 것입니다.  핵에너지 및 위험한 폐기물을 남기는 기술도 마찬가지로 금지될 것입니다.  티베트를 지상에서 가장 큰 자연의 보고(寶庫)로 바꾸는 일이 티베트 정부의 과업이 될 것입니다. 티베트를 완전히 비무장화된 평화의 성지로 만들기 위해 지역 평화 회의가 소집될 것입니다. 이런 협상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신뢰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라도 중국 정부는 당장 티베트 인권 침해 행위를 중단하고 중국인들을 티베트에 이주시키는 정책을 포기해야 합니다.

 

제 구상은 이렇습니다. 티베트인들 중에는 이런 온건한 입장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많으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아마도 몇달 뒤 티베트 현지, 그리고 망명 티베트인 공동체 내에서는 많은 논란이 일 것입니다. 모든 변화 과정에는 어쩔수 없이 이처럼 핵심되는 단계가 있습니다. 저의 이런 구상이 티베트인 고유의 정체성을 호가립하고 티베트인들의 기본권을 되찾는 동시에 중국의 이익도 고려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는 하되 중국과의 협상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어디까지나 티베트인들이 결정의 궁극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저의 제안에는 어쨌든 국민적 합의하에 티베트인들의 소망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전체적 과정의 프로젝트가 담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구상에 근거하여 중국 정부에 제안서를 제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티베트 망명정부를 대표하는 협상단이 구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중국인들을 만나 상세히 토론하고 양측에 공평한 해법을 찾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중국 정부와 지도층이 제가 발표한 구상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깊이 연구해주었으면 합니다. 오직 대화만이, 그리고 티베트의 현실을 정직하고 명징하게 분석하겠다는 의지만이 제대로 된 해법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면서 중국 정부와 논의를 이끌어 가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제안은 화해의 의지가 깃든 제안이며, 중국측도 우리에게 이 같은 태도를 보여 주기를 바랍니다.

 

독특한 역사와 심오한 정신적 유산 덕분에 티베트는 아시아 중심에서 평화의 성지 역할을 썩 잘 수행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완충 역할을 하는 중립의 지위는 아시아 전체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으므로 회복되어 마땅합니다. 그렇게되면 아시아의 평화와 안전,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전이 보장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티베트가 무력에 의해 강점된, 고통에 찌들고 비생산적인 나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티베트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로운 균형을이루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 여러 지역을 짓누르는 갈등의 해결에 우리가 창조적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외세에 강점당한 영토에서 식민 통치의 구태의연한 법칙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임을 중국 지도층은 알아야 합니다. 큰 안목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나라들의 진정한 연합은 오직 목표했던 결과가 당사자들을 만족시킬 때, 그리고 모두의 자유로운 동의와 참여라는 바탕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정한 틀 안에서 티베트 문제가 해결된다면, 비단 티베트인과 중국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이 지역과 지구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도 이익이 될 것입니다.

 

        - 1988년 6월 15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 연설중에서 (책.달라이 라마, 나는 미소를 전합니다.)

 

 

제안이 있은 후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자 1996년, 1997년 "티베트인의 국민 투표에 의해 티베트의 대의를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고 티베트 사회에 재차 제안했고 사전 여론 조사에서 "국민 투표없이 중도적 접근을 지지한다. 어떤 결정이든 중국과 세계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달라이 라마가 선택한 길을 지지한다"는 의견서 64%가 넘은 가운데 우리나라 국회격인 망명 티베트 대표자 의회를 통해 1997년 9월 18일 최종 통과되기에 이르렀습니다.

 

 

 

②  그러나, 민주적 절차에 의해 독립에서 자치로 공식 정책이 변화되었다고 해서 TYC의 계속

     된 독립 요구 주장을 달라이 라마는 묵살하거나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정문태 기자의 시선

     대로 현재도 달라이 라마의 압도적인 체제하에 있다면 과연 TYC의 독립 요구 주장이 티베

     트 사회에서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에 무를 싣습니다.

 

     14대 달라이 라마 즉위 이후 주된 관심은 티베트 사회의 '변화'였습니다. 인도 망명 이후

     티베트 사회에 민주주의를 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총리와 의회 의원 주민

     직접 선출에 이어 2011년 3월 10일, 끝내  달라이 라마 제도의 한 축인 '정치 권력'을 선거

     로 뽑힌 총리에게 모두 이양하고 정치에서 완전 은퇴하기에 이릅니다.

 

     지난 4월 2일, 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 웨스트 뱅갈 살루가라에서 티베트인들에게 중도  

     정책이 중국 지식인들로 부터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며 정책 필요성에 대해 호소하며 다시

     설득에 나섰고 이후 4월 17일 인도 남부 4개 지역 티베트 청년 회의 지부장을 비롯한 30명

     의 회원들이 회의를 갖고 기자회견을 통해 달라이 라마의 살루가라 연설 내용에 지지를 표

     명하고 5월23일 부터 25일까지 인도 다람살라에서 개최 예정인 '국제 랑짼(독립) 컨퍼런

     스' 소-이 회의는 결국 열리지 않았다-를 본부에 공식 요구하며 티베트 자유 운동 방향

     의 변화를 위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했습니다. 또한 4월 22일 남인도에 거주하는 티베

     트 동부 역 출신 300명은 달라이 라마의 중도 책 지지를 표명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

     다.

 

 

2013년 5월 27일, 인도 다람살라에서 열린 '티베트 청년 회의'(TYC)의 제15차 전체 회의가 3년만

           에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전 세계 40개 지부에서 130명의 대표단이 참석했으며 단상에는 달라이 라마 초상화에 티베트 전통 스카프인 '카딱'이 존경의 표시로 걸려 있다.

 

(사진/티베트 썬)

 

 

     2013년 5월 27일부터 6월 1일까지 인도 다람살라에서 열린 제15차 TYC 전체 회의에서 3년

     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체왕 릭진 의장은 개회사를 통해 티베트 국민을 이끄는 달라이

     라마의 끊임없는 노력에 깊은 감사를 표명하며 "TYC는 달라이 라마 성하와 티베트 망명 정

     부를 고의적으로 비방한 적이 없었다"며 "만약 TYC의 무지로 인해 달라이 라마 성하를 모

     욕했다면 이번 회의를 통해 사과를 드리고 용서를 구한다"며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아직 TYC측은 독립 추구 노선 변화에 대한 공식 발표는 없으나 대신 홈페이지에는 前 행정

     부 수반인 삼동린뽀체의 '중도 정책 지지'를 호소하는 동영상을 올려 놨습니다. 머지 않아

     달라이 라마의 도 정책을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설득하며 기다려왔습니다. 이렇듯 달라이 라마는 중도 정책이

     공식 입장으로 채택된 후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의견을 반대해 온 티베트 최대 독

     립 운동 단체인 '티베트 청년 회의'나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절대 권력을 휘두르

     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며 상호 설득하는 과정속에서 건강한 주 사

     회가 자리 잡기를 바랬고 언젠가 다시 티베트로 돌아간다면 민주적 시스템을 그대로 새로

     운 자유 티베트 사회에 담으려는 달라이 라마의 간절함이 반영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정문태 기자가 생각하는 신정체제에 따른 그런 절대 권력은 현재 티베트 사회에서 찾아보

     기 힘들다는 점을 분명히 해둡니다.

 

 

1974년,  티베트 무력 투쟁을 끝낸 '녹음테이프'

 

티베트 문제에 미국 CIA가 개입했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1959년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관련 내용이 보도된 후 이후 잊을만 하면 언론은 시선끌기용 소재로 활용된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사실 진부하기까지 합니다.

 

정기자가 제시한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은 뒤로 하고라도 풍전등화에 놓인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미국 CIA 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 바짓가랑이도 잡았을 것 입니다.  그 상황에서 제국주의가 어떻고 CIA의도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분간하기도 힘든 긴박한 상황이였고 구. 소련에 가서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도대체 티베트는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할까요?

 

티베트 무장 투쟁의 중심이였던 '추시 강드룩'이 네팔 정부의 공격을 받아 해산당하면서 결국

티베트 무장 투쟁은 끝났다라고 기사에선 말합니다.   그 이면에는 무장 투쟁을 끝낸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추시 강드룩은 티베트 독립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노라고 서원했었고 네팔 무스탕지역으로 옮겨와 투쟁을 계속하던 중 중국이 네팔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서 이들을 공격하자 그렇다면 네팔군과도 싸우겠노라며 결의를 다집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달라이 라마는 그렇게 될 경우 네팔에 망명와 있는 수천명에 이르는 티베트인들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고 네팔과 싸우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1974년 자신의 측근을 통해 '모두들 무기를 버리고 평화롭게 살아 줄 것을 당부'하는 메시지가 담긴 녹음테이프가 추시 강드룩 지도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자신들의 투쟁을 격려할 줄 알았던 부대원들은 무장투쟁을 그만두라는 지도자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듣고 슬픔에 빠졌으나 곧 지도자들은 부대원들을 해산시키고 자신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무장 투쟁의 슬픈 역사는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만약, 달라이 라마가 지금까지 비폭력 투쟁이 아닌 무력 투쟁을 장려했거나 묵인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1970년대 미국이 중국과 친해지며 지원이 중단되었다 하더라도 티베트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되찾기 위한 그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지난 50년 이상 평화 시위를 벌이고 책이나 노래를 통해 자유를 외치다 이젠 더 이상 방법을 찾지 못한 티베트인들은 희망을 달라며 2009년 이후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르는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자유'와 '달라이라마 귀국'을 요구하며 쓰러져 간 숫자는 자그마치 120명에 달합니다.

 

중국 정부는 분신 사태를 두고 달라이 라마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며 계속 비난하고 있지만 만약, 달라이 라마가 정말 그랬다면 4년째 120명이 단 몇일안에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을 뛰어넘는 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자신들이 존경하는 정신적 지도자 14대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투쟁 원칙에 따라 대부분 티베트인들은 맨손으로 자유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으며 부모가 걸어 온 길을 자식들이이어 반세기가 넘는 길고 긴 투쟁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누가 진정 약자인가, 방향을 잘못 잡은 정기자의 눈?

 

정문태 기자는 지난 칼럼을 통해 약자를 위한다며 엉뚱하게도 달라이 라마를 '환상을 먹고 자란 세계의 우상'이라며 어처구니 없는 비난을 하고 이번 기사에는 절대 권력인 신정체제하에 고통받는 티베트 민중들 입장에서 글을 썼다고 하지만 오히려 중국 정부의 프로퍼갠더를 옮겨 놓은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기사에서 망명 티베트인 청년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스태블리시먼트 22’(Establishment 22) 특수 부대를 1971년 11월 방글라데시 치타공 전투에 투입시켰다는 이야기는 지난 해 해외 티베트 뉴스 매체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해당 부대가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알고 지낸던 티베트인이 당시 전쟁에 참전한 분으로 부터 게릴라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가 무전 내용을 티베트어로 주고 받다 보니 적군이 작전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은 바 있습니다.

 

 

1971년 방글라데시 치타콩 천투에 참가한 티베트인 특수 부대.티베트인 특수 부대원 선발은 징병이 아닌 모

병이였습니다.  만약, 망명 정부가 앞장서서 강제로 이들을 선발해서 인도군으로 보냈다면 이는 문제가 될 수

도 있겠지만  초창기 이 부대는 중국을 주적으로 활동했고 급여를 받는 직업 군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문태 기자는 1984년 인도 골든템플 진압, 1999년 파키스탄 전쟁에도  망명정부가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인도군 소속으로  더  이상 망명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 현재는 티베트인들이 고원과 빙하지대 환경에 익숙해 인도-티베트 국경 지대 경비에 투입되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asiafinest.com)

 

 

 

정문태 기자는 치타공 전투외에도 자신들의 전쟁이 아닌 대리전에 투입되어 무고한 희생을 치른 티베트인을 위한 아픈 역사에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지도자를 기다려왔다며 앞글에서 티베트인들이 자유를 향한 투쟁을 존경해오면서도 달라이 라마와 망명정부를 비판없이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이라고 말하며 은근히 지난 편의 잘못된 자신의 글을 합리화시키려 하고 있습니

다. 

 

1971년 치타콩 전투가 인도측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인도 당국은 망명 정부에 요청했고 참전 명령은 티베트 망명정부 보안국으로 부터 받았으며 망명 정부 보안국은 선택 여지가 없었다며 당시 참전 티베트인 군인은 전했으며 이들은 인도를 위해 참전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인구 12억 대국에 얹혀 사는 티베트인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망명 정부는 기껏 우리나라 읍사무소 규모 정도 밖에 되지 않고 1970년대는 더욱 열악한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는 어느 정도 였을까요? 정말 정기자가 약자와 소수를 말하고자 했다면 그의 매서운? 눈은 전쟁으로 내몰은 인도 정부를 향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또한, 1984년 골든템플 진압 사건, 1999년 카르길 전투 등에 이 부대가 참전한 것을 놓고 마치 망명 정부가 그때도 관여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그 당시에는 이미 인도군 소속으로 완전 편입되어 더 이상 망명 정부가 관여할 수 없게 되어 있으며 지금은 히말라야 지역에서 국경 수비를 맡고 있습니다.

 

티베트를 침략한 중국,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외면한 유엔, 대중국 봉쇄용으로 티베트를 이용한 미국 CIA, 자신들의 전쟁에 티베트인 부대를 참전시킨 인도. 

 

힘없는 나라 티베트는 강대국 사이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힘든 노력을 해왔고 지금도 진행중이며 그 끝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문태 기자가 진정으로 약자와 소수를 위한다면 저널리스트로서 날카로운 매의 눈은 어디를 보고 있어야 하고 진실을 위한 펜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요?  

 

정문태 기자의 두번째 기사 끝에 "이게 바로 앞글에서 티베트인들의 자유를 향한 투쟁을 존경해오면서도 달라이 라마와 망명정부를 비판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 까닭이기도 했다."며 괘변과 어디인가 앞뒤 맞지 않는 말이 섞인 변명아닌 변명이 더욱 허탈하게 만듭니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풀려 독자들을 우롱했고 진정한 약자와 소수가 누구인지를 판단하지 못한 채 중국 정부의 달라이 라마 비난 수준의 복사판에 불과했던 정문태 기자의 글과 이를 여과없이 실은 한겨레에 대해 느낀 실망은 쉽게 회복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이 땅에서 되풀이 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정문태 기자의 <상편> '환상을 먹고 자란 세계의 우상'에서 그는 네팔에서 열린 78회 달라이 라마 생신 기념식을  놓고 '큰 잔치판이 벌어졌다고 한다'며 티베트인에게 가장 중요한 이 날을 한낱 동네 잔치판으로 비하했다. 같은 날인 2013년 7월 6일  동부 티베트에서도 정기자가 말한 그 잔치판이 벌어졌다.  지도자의 생신 축하를 위해 모인 약 2천명 이상의 티베트인들은 오색 기도 깃발에 걸린 달라이 라마 초상화에 정성껏 인사들 드리며 장수를 기원했다.  그런데, 중국 당국은 14대 달라이 라마 초상화를 공개적으로 걸거나 종교적 숭배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군중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무차별 총격과 치루탄 가스총을 발사해 15명 이상의 티베트인이 크게 다쳤다.    자! 보자. 정기자가 말한 소수와 피지배자는 누구이며 약자가 누구인지.

 

(사진/티베트 인권&민주센터TCHRD)


  1. 티베트 망명정부 공식 홈페이지 '중도 정책'http://tibet.net/the-middle-way-policy/ [본문으로]
Posted by 룽타(風馬) www.lungta.kr
TAG 이슈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