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중국 쓰촨성 추안동 교도소에서 종신형으로 복역하다 건강이 악화돼 숨진 것으로 알려진 티베트 불교 뚤꾸(환생한 승려를 뜻하는 말.) 텐진 델렉(=텐진 데렉, 당시 65세)린포체의 조카가 티베트를 탈출해 무사히 인도 다람살라에 도착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텐진 델렉 린포체의 여조카인 '니마 하모'(26)가 티베트를 탈출해 네팔을 거쳐 망명 티베트인들의 중심지인 인도 다람살라에 24일(현지시간) 아침 무사히 도착했다고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텐진 델렉 린포체 가족과 가까운 롭상 욘땐은 "그녀는 7월 24일, 일요일 아침 인도 다람살라에 무사히 도착했고 지금은 건강하게 티베트 리셉션 센터(티베트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임시로 머무는 공공수용시설)에 머물고 있다"며 27일 니마 하모의 다람살라 도착 소식을 전했습니다.


또한, 그는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 14대 달라이 라마는 물론 망명 정부도 니마 하모의 다람살라 도착을 환영했다고 덧붙혔습니다.


니마 하모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 당국이 린포체가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했지만 이는 거짓이며 독살당했다고 폭로했습니다


2016년 7월 27일. 인도 다람살라에서 언론과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는 텐진 델렉 린포체 조카 '니마 하모'(26)

(사진/AP)



린포체는 '심장마비'가 아닌 '독살'당했다.



중국 당국은 2015년 7월 12일 고인이 숨지자 가족들에게 전화로 통보해 니마 하모는 어머니(린포체의 여동생)와 함께 시신을 인도받기 위해 교도소에 도착했으나 시신을 보여주지도 않아 지니고 갔던 티베트 전통 스카프 '카딱'(하얀천)을 교도소 문 앞에 걸고 자살을 시도하자 직원들이 시신을 잠깐 볼 수 있게 허용했습니다.


하모는 삼촌의 시신은 덮혀 있었고 밖으로 나온 손톱이 검게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감옥에 있던 다른 수감자들이 고인의 입술이 검게 변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하모는 죽음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2016년 7월 27일. 티베트 사회에서 큰 존경을 받았던 텐진 델렉 린포체의 죽음에 대해 털어 놓고 있는 니마 하모.  다시는 가족들을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세강에 진실을 알리기 위해 탈출을 선택했습니다.(사진/ AP)



6살 딸아이와 어머니를 두고  떠나 온 하모, "세계에 진실을 알리기 위해 탈출했다"



하모는 6살 딸아이와 어머니를 두고 홀로 탈출하는 것에 대해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린포체의 사망과 관련된 진실과 티베트 현실을 세상을 알리기 위해 약 9,700달러(약 1,090만원)를 밀수업자에게 건네고 차량을 이용해 약 2주만에 탈출에 성공해 네팔을 거쳐 인도로 망명했습니다.


하모는 린포체 사망 후 동부 티베트 리탕에서 약 300여명의 주민들이 시신을 돌려달라고 시위를 벌였으며 중국 공안들의 발포로 1명이 숨지고 여러명이 다쳤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또한,  중국 당국은 린포체가 '가짜 라마'라며 선전하고 환생자를 찾는 것을 금지했다고 밝혔습니다.


린포체 사망 후 조카 하모와 그녀의 어머니 돌카르 하모(고인의 여동생)는 린포체의 죽음을 외부 세계에 알려렸다는 혐의로 약 18일간 구금되었다 풀려났습니다.


2016년 7월 27일. 텐진 델렉 린포체의 사진이 실린 책을 든 조카. 린포체의 여동생인 하모의 어머니가 생전에 면회했을 때 잦은 구타와 배고픔으로 고통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사진/AP)




티베트 사회를 위해 봉사한 '텐진 델렉 린포체'


1950년 동부 티베트 리탕에서 태어난 텐진 델렉 린포체는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 14대 달라이 라마 밑에서 공부를 했으며 1987년 고향으로 돌아와 티베트 문화, 교육, 보건, 환경 보존 등을 위해 봉사하며 주민들로 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중국 당국으로 부터는 눈엣가시였던 린포체는 2002년 폭탄 테러 혐의라는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국제 사회 캠페인에 힘입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복역 중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습니다.


텐진 델렉 린포체가 심장마비가 아닌 독살로 숨졌다는 하모의 폭로를 보고 낯설지가 않습니다. 


1989년 숨진 티베트의 제2인자 10대 판첸라마와 세계 최대 불교 승원 라룽가르(중:오명불학원)를 세운 직메 푼촉 린포체의 2004년 공식적인 사인은 '심장마비'였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모두 심장마비가 아닌 중국 정부의 독살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중 중국의 한 대학에서 박사 과정으로 티베트 역사를 공부한 박근형님이 지은 '티베트 비밀역사'(지식산업사, 2013년)에 10대 판첸라마(=빤첸라마)의 독살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989년 1월 9일 빤첸라마와 후진타오는 같이 라싸로 왔고, 1월 17일 같이 짜시륀뽀(=타쉴훈포)로 왔다. 그런데 1월 28일 빤첸라마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라싸에서 한 가지 소문이 퍼졌다. 내가 직접 취재해서 기록한 그 소문은 다음과 같다.


1월 22일부터 빤첸라마는 계속 짜시륀뽀에서 설법했다. 그리고 1월 27일 설법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람살라에 계신 달라이 라마는 우리 유일한 희망이다!" 이날 저녁, 방 안에 빤첸라마와 시종스님 단 둘이 있었다. 빤첸라마가 창밖을 지긋이 보며 말했다. "나, 내일, 샴발라로 갈까?" 샴발라는 '샹그릴라'라고도 한다. 티베트 이상향이다. "설마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음...알았다."  


다음 날 아침,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빤첸라마가 차를 탔는데 옆에 수행스님이 없고 사복경찰 두 명이 타고 있었다. 이 승용차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수행스님은 이 차에 타지 못했다. 그날 저녁 빤첸라마가 죽었다. 


중국 정부는 빤첸라마 시신을 공개하지 않았다. 정말 심장마비로 죽었다면 시신을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 끝내 이런 주장이 새어 나왔다. '빤첸라마 시신에 있는 손톱 10개가 모두 검은색이었다' 


라싸 중심가에 찻집이 여러 개 있다. 이 찻집에 뉴스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2월 첫째 주, 그 시종 스님이 한 라싸 찻집에서 울분을 토했다. 자신이 1월 27일과 28일 겪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다 한 뒤 이렇게 말했다. '다 내 탓이다! 나는 바보였다! 샴발라로 간다는 말이 '내일 죽는 다'는 뜻인지 몰랐다. 바로 그날 내가 빤첸라마를 모시고 다람살라로 망명했어야 했다!" 그 사람은 엉엉 울더니 그 찻집을 나가 버렸다. 그날 그 사람은 목매달아 자살했다.』



어린 딸과 노모를 고향에 두고, 탈출 과정에서 어떻게 될지 모를 위험을 무릎쓰고 티베트를 탈출할 수 밖에 없었던 니마 하모의 소식을 전하면서 먹먹했습니다.  


중국 교도소에 아직도 수백명의 티베트인의 정치범이 복역중에 있고 2009년 이후 140명이 넘는 티베트인들이 분신하는 슬픈 역사는 언제쯤 멈출까요?


텐진 델렉 린포체의 사인 규명을 위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티베트의 현실이 세계에 알려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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